베네치아의 여자 –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 가지 러브스토리
16세기도 4분의 1이 지난 시대의 이야기다. 빈첸차 태생의 갈레아초라는 스물두 살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교구의 사제에게 읽기와 쓰기를 배웠는데 매우 명석해서 열다섯 살때에 빈첸차 사제의 눈에 띄었고다. 사제가 빈체차보다도 더 큰 도시인 파도바의 사제로 임명받아 갈 때 갈레아초를 데려가 훈육시키려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를 마다할 리 없었다. 예정대로 그는 성적이 우수하여 스물두 살에 이미 신학과 고전 두 개의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앞으로 대학교수가 되는 길과 다른 하나는 사제의 비서를 하면서 그 후견에 힘입어 성직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찬란한 앞길이 보장되어있는 젊은이에게 그의 인생을 망쳐놓은 일이 생겼다. 다름아닌 세계의 보석상자라고 불리는 수상도시, 아름답고도 관능적인 베네치아의 한 여자 때문이었다.
계절도 아름다운 5월에 베네치아의 총대주교에게서 공식 초대를 받은 파도바의 사제는 갈레아초와 함께 방문하게 된다. 파도바의 사제는 갈레초아를 자신의 아들이나 다름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어떤 공식 초대에도 빠짐없이 데리고 다녔다. 이날 밤 곤돌라가 끊임없이 도착했는데 갈레아초는 2층 창가에서 새삼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밤을 재확인 하는 듯한 심정으로 이 모든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그를 사로잡는 한 여인이 곤돌라에서 내리는데 사른 살쯤 되었을까, 키가 코고 체격도 당당했으며, 살결은 투명한 대리석처럼 빛 났다. 거기에 머리 숱도 많아서 마치 진주알을 흰 물결처럼 장식한 아름답고 검게 빛나는 머리 스타일로 고개를 꼿꼿이 쳐 든채 그리티 궁의 현관에 들어섰다.
어느 틈엔가갈레아초의 뒤에 와서 선 파도바의 사제가 성직자답지 않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그리마니 부인 비앙카는 언제 보다도 아름다워.” 비앙카는 전 총독 부인을 비롯해 베네치아 명문가의 부인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단연 군개일학으로 돋보였다.
부인은 뛰어난 미모에 못지않게 교양도 높아 그걸 존경하여 시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이렇게 찬사를 보내곤 했다. “주노의 기품과 미네르바의 두뇌에 비너스의 매혹을 겸비한 베네치아 제일의 정숙한 여자다.” 그날밤 갈레아초가 부인과 보낸 시간은 사제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한 시간 정도였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그의 귀에는 이틀 후에 부인이 초대한 것을 사제가 흔쾌히 승낙했다는 말이 마치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들렸다.
그로부터 갈레아초는 베네치아를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한다. 핑게는 고사본을 보러 간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랬다. 갈레아초는 비앙카가 아직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젊은이의 사랑을 상상외로 간단히 받아들여주는 것에 기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갈레아초의 순진한 사랑과는 반대로 비앙카는 고명한 남자들의 찬사를 늘 받아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생각은 하지 않고 만난다. 그녀는 머지않아 버려질 호기심에 지나지 않으며 오직 그의 젊은 육체만 탐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렬한 사랑 놀음에 빠져있던 갈레아초에게 로마에 가야만 하는 일이 생기게된다. 그것은 파도바의 사제에가 교황 다음 지위인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당연히 파도바의 사제와 함께 가야할 입장이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두 손들어 열렬히 환영하고 따라 갔을텐데 지금은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정말로 착찹한 심정이었다. 그는 그에게 다가온 천금같 은밀한 사랑을 버릴 생각이 꿈에도 없었다. 지금 살고있는 파도바와 베네치아라면 평지로 30킬로미터의 거리지만, 로마와 베테치아는 그들의 사이를 떠어놓는 거리가 지금의 스무 배나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자기를 길러주고 앞길을 열어주고있는 추기경의 말을 거역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고민끝에 생각 해 낸 것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가져가는 것이었다. 초상화를 보면서 그녀를 매일 보는 듯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비싼 화가를 찾기는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의 돈에 맞게 찾아낸 스코루초라는 이름의 화가를 만나게 된다. 화가 스코루초는 매일 그리마니 가에 다니며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고 한 달 쯤 후에 완성되면 로마로 보내주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났다. 베네치아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갈레아초는 비앙카에서 사흘에 한번씩은 꼭 꼭 편지를 써 보냈지만 그녀로부터는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아보지 못했다. 석달이 지난 후에는 갈레아초의 견딤에도 한계를 느끼게 된다. 추기경에게 어머니가 병중이라 급히 방문해야된다는 핑게로 휴가증을 받아낸다. 로마까지 가는데 나흘이 걸렸다.
숨이 차도록 그녀의 집으로 급히 달려간 갈레아초는 하녀가 부인이 외출 중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다음으로 달려간 곳이 화가네 집이다. 화가의 집을 들어가기 전 반쯤 열려있는 안에서 일어나는 광경을보고 보게된다. 거기서 갈레아초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눈으로 보게된다. 다름아닌 그 현숙한 부인 비앙카가 창녀의 옷을 입고 진짜 창녀는 비앙카의 가운을 걸치고 있다. 화가 스코루초가 난폭한 동작으로 부인의 앞 가슴을 풀어헤쳐도 잘 길들인 순한 양처럼 행동한다. 세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추잡한 광경을보고 갈레아초는 넋이 나간다.
여전히 낮 동안의 그녀는 현숙한 여인이다. 그리마니 저택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기품이 넘치는 태로로 대응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비앙카는 낮 동안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상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변한다.
갈레아초는 전 날 밤에 본 그 광경을 도저히 악몽을 꾼 것으로밖에 달리 생각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낮에 모른 척하고 비앙카를 찾아갔지만 “이제는 찾아오지 마라. 다 부질없는 짓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날 밤 갈레아초는 화가의 집 근처 골목길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밤중이 다 되어 먼저 비앙카가 먼져 나와 재빨리 자기 집 방향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화가와 창녀가 둘이 끌어안고 나온다. 한참을 가다 창녀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화가만 걸어간다. 화가가 좁고 어두운 모퉁이를 돌려할 때 단검이 화가의 배로 빨려들어갔다. 갈레아초는 최후의 심장을 다시 겨누었다. 좁은 터널 입구에 있는 성모상의 상야등이 땅바닥에 쓰러진 검은 고깃덩어리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 경찰의 끈질긴 추적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범인을 처벌하는 데도 혹독하기로 악명 높았다. 갈레아초는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것 밖에 길이 없었다. 추기경이 준 특별통행증 덕분에 황급히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거룻배를 탈 수 있었다. 사흘 뒤 밀리노 영내에 들어갔다. 일단은 안전한 곳이었다.
잿빛 구름이 낮게 깔린 겨울의 밀라노에서 갈레아초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의 학식 정도라면 일거리를 찾는 데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사람들 눈을 피해야 하는 몸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한테 부탁받아 편지를 대필하거나 장부 정리를 하며 그날그날의 양식을 해결해야만 했다. 추위와 고뇌를 잊기 위해서 술에 절여 지내게 됐다. 그의 최후는 정말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의 피나는 공부와 성직자로 갈 수 있는 길이 훤히 열려있었음에도 한 여인 아니 백야시에게 홀려 그의 인생을 다 망가뜨리고 말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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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사다 화분을 정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