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하지 않고 잠든다.
눈 뜨는 시간이 기침시간이다. 새벽에 걸려올 전화도 없다. 이제 집 전화와는 작별해야 할 것 같다. 그 동안 혹 핸드폰이 진동으로 되어있을때 샵에서 급한 연락을 집으로라도 연락을 해야 했기에 가지고 있었다. 낮에 은행에 볼일이 있어갔다. 잘 다듬어진 머리와 정갈한 옷에 구두를 신고갔더니 텔러가 “와~”한다. 내가 “이제 내 원래 모습”이라니 그녀가 웃는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코스코에도 갔다. 입구에서 조금 걸으면 보석이 진열되어있고 거기 거울이 있다. 그 동안 거울을 피해 다녔다.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기가 민망해서였다. 이제 거울을 보면서 걷게됐다. 이 모든것이 은퇴라는 거대한 단어가 내게 베푼 선물이다.
일주일동안 내가 없는 사이에 몰래 자란 야채들과 마주했다. 오이는 지난 주 부터 따 먹기 시작했는데 오늘 도 하나 땄다. 토마토 대가 내 키만큼 자랐다. 빨간 코스모스도 곁에서 한 몫 한다. 지난 달 씨 뿌려 놓았던 열무와 상추가 너풀거린다. 열무를 솎아 오이와 함께 겉절이를 만들었는데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집안 구석의 먼지를 닦아낸다. 평소 바쁘다는 핑게로 눈으로 힐끗 보고만 지나치던 곳들을 여유롭게 걸레질을 한다. 집안 곳곳에서 윤이난다.
마늘 밭으로 발 걸음을 옮긴다. 물을 듬뿍주면서 고랑 사이의 잡초를 뽑느다. 마늘 잎 가운데서 언제 나왔는지 쫑이 보인다. “오, 쫑” 내일은 가위를 가져와 쫑을 다 잘라야겠다. 쫑을 잘라내야 마늘이 튼실하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영양분이 쫑으로 가기 때문이리라. 마늘 밭 사이사이로 진홍색 겹 파피들이 피어있다. 왜 하필 마늘 밭에서 꽃을 피우나? 아마도 민밋하기만 한 마늘 밭이 너무 심심해서 일꺼라 생각해 본다. 마늘 씨앗을 살때 친구가 말 해 주던 생각이 난다. “마늘은 딱 한 번 땅 속에 꾹~ 찔러 넣기만 하면 돼. 아무 할 일이 없어 저절로 크거든.” 과연 그런것 같다. 작년 11월 초에 심어놓고 겨우내내 거의 안 쳐다 보았고 봄에 몇 번 마늘밭에 내려와 보고 물 준 기억 뿐이다. 마늘이 이 처럼 강하기 때문에 마늘을 많이 먹으면 힘이 나는가 보다.
밭에서 얼쩡거리는 시간이 길어지고있다. 이놈을 보면 저놈이 나를 부르고 앞 마당에 있으면 뒷 마당에서 나를 부른다. 일 할때는 대충 했던 일들을 이제는 꼼꼼이 돌아보게된다. 비 오는 겨울이 긴 빅토리아는 6월 현재가 최상의 날씨다. 온 동네가 꽃 잔치다. 해마다 빅토리아는 꽃 송이를 세기도 한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 다른 지역에서도 한다. 나도 내년에는 우리 집 마당에 일찍 핀 꽃 송이를 세어 www.flowercount.com에올려야겠다.
오이를 여섯봉지 사와서 김치를 담궜다. 이번 주일에 성가대 회식을 우리집에서 하는데 모두들 내 오이김치를 좋아한다. 오렌지, 수박, 파인애플, 사과, 레몬 그리고 빨간 피망을 넉넉히 갈아넣었다. 매 주 열심히 연습하는 대원들의 사기를 조금이라도 올려주고 싶다. “대원들이어 먹고 힘내라.”
편하게 봉사할 수 있는 기쁨과 시간에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그 자유, 은퇴는 매일 내게 너무 좋은 것들을 안겨주고있다.
“은퇴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