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며칠전 만든 새 옷을 입어보았다. 패턴의 사이즈 8을 하니 내 사이즈가 나온다. 내일 교회 입고 가려고 잘 걸어두었다.

       

나와 내 나이또래 두 사람이 멀리 Nanoose Bay로 나들이나갔다. 내일이 7월 한 여름인데 웬일인지 날씨는 그리 따사하지 않고 아침에는 비 까지 내린다. 때마침 캐나다 데이 연휴라 식당이 만원이라 한 시간을 기다리란다. 먼 길 오가는 자동차안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마치 옥수수나 군 밤을 굽는 듯 구수한 맛이난다. 6.25 전쟁 후 힘들었던 이야기는 우리들을 육십 칠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피난길에서 죽은 엄마 곁에서 칭얼대는 어린아기를 보다 놀래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그만 우리 부모님을 놓쳤지 뭐예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줄 알았어요. 나는 그때 겨우 일곱살이었구요.  내가 지금도 어디 척~ 못 나서는 것은 그때 받은 충격이있는지도 모르지요.”

“어떻게 부모님을 다시 만났어요?”

“동네 할머니가 빠른 걸음을 걸을 수 없어서 손자를 데리고 천천히 가다가 나를 발견하고 함께 가자며 데리고 가셨어요. 다행히 길에서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아이고나, 만약 그때 부모님을 못 만났더라면 고아가 됐을 것이고 캐나다도 못 왔을것이며 한국에서도 그 유명한 학교도 졸업 못 하셨을 테지요. 얼마나 다행이세요?”

“그럼요. 지금 생각해도 앗찔하답니다.”

“아이구 부러워요. 좋은 부모님두셔서 일찍 아주 일찍 유학오셔서 공부 많이 할 수 있었고 멋지게 인생 살아가시네요.”

1966년 까마득한 옛날에 여자를 캐나다로 유학시킬 마음이 생긴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그 시절에도 아버지의 목표는 자식들을 다 외국으로 유학보내는 것이있으며 그것을 실천하셨으니 정말 존경스럽다.

우리 세 사람은 젊었을때의 아픔이나 실수담을 나누면서 남은 우리들의 시간을 다독이면서 잘 마무리하자며 짧은 하루 여행을 잘 마쳤다.  (사진 나누스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