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영은 크리스마스 캐롤로 마음이 들뜨면서 무탈하게 한 해를 지내온 것을 신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12월을 맞이한다. 이 날은 남편 규현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랫만에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 제목은 ‘One Day’다. 남녀 두 사람의 진한 사랑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 가영은 같은 여자지만 여배우 앤 해서웨이의 청초한 아름다움에 반한다. 남편 규현도 아내를 처음 사랑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서 두 남녀 배우의 진한 장면에서는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도 받는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 규현은 비록 지금은 나이들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아내 가영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귀엽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던가. 잠시 눈을 감고 아내의 어깨를 만지면서 입을 연다. “당신도 저 여배우처럼 예쁜 시절이 있었지?” “어머나 당신 아직도 그 때의 나를 생각헤 주는 거에요? 고마워요 여보.”

규현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선물을 생각하고 있다. 살면서 늘 아내에게 빚진 자 처럼 살아왔는데 “왜 우리라고 저 영화의 주인공처럼 로맨틱하게 살지 말라는 법이 있어?” 규현은 마음속으로 주먹을 물끈쥐고 이제 남은 세월을 아내만을 위해 잘 해 보려는 심지를 굳혀본다.

“여보, 이번 크리스마스에 당신에게 근사한 선물을 안겨줄게.”

“어머나, 정말이이야요? 으응~ 고마워요 여보옹.” 가영은 콧 등을 지긋이 누른 듯 한 애교섞인 목소리로 남편의 가슴에 살며시 안겨본다. “뭘, 당신이 늘 나와 아이들을위해 희생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좀더 근사한 남편이 되어 볼게.”하며 어께를 으쓱 추스린다. 내 놓고 표현 못 하는 남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하고 감격스럽기도 하다. 이제 철이 드는 것인지 아무튼 오늘밤은 무드가 익어가고 있다.

아내 가영도 나름대로 이번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무엇을 선물해 줄까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직접 묻기로 했다. “여보, 당신은 무슨 선물을 받고 싶어요?” “아, 난 아무것도 필요없어. 당신이면 됐어.” 가영은 언제나 선물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남편의 말을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시간내어 처녀시절에 만들어 보았던 털 모자를 손수 짜서 남편에게 선물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몇 날이 지나고 규현이 아내에게 자기가 보아 둔 선물이 코스코에 있는데 지금 너무 붐비니까 조금 조용한 틈을타서 가 보자고 한다. 가영은 남편이 자기 선물을 코스코에서 사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코스코에서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살 것이 무엇일까? 그릇들은 아닐테고 먹거리는 더 더우기 아니고 후줄그레한 옷 들도 아님을 안 가영은 번듯 섬광처럼 지나가는 생각에 “앗, 보석” 이라며 속으로 소리를 질러본다.

남편이 보석 코너로 가영을 데리고가서 골라보라면 어느것을 고를지 미리 알아 두는것이 좋다고 생각한 가영은 남편 몰래 코스코를 들락거려본다. “오, 귀여운 것.” 첫 눈에 가영의 눈을 끌어당기는 분홍 크리스탈 목거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 한다. 가격이 699불 + Tax 다. 조금 눈을 올려뜨니 그 위에 같은 셋트의 귀걸이가 보인다. “어쩌면” 귀걸이도 목거리가격과 비슷한 것을 확인한다. 가영의 목이 깊에 파진 분홍 드레스에 마땅한 목걸이가 없었는데 이것을 걸고 나면 모두들 멋지다고 말 할 것 같다.

가영은 매일의 삶이 즐겁기 한이없다. 랄라룰루를 외치며 집 안 팍을 잘 정리하고 남편의 상에 반찬 두어가지는 덤으로 올라간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규현이 무엇인가 커다란 박스를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온다. “여보, 이게 뭐예요?” “응, 당신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 “네 에?” “그렇소 당신에게 꼭 필요한 거요. 부엌이 좁아서 늘 그릇을 이곳 저곳으로 옮기고 하면서 불편해하는 당신을 조금 더 편하게 해 주려고 사왔거든. 어때, 마음에 드는지?” 가영은 할 말을 잃고 잠시 머뭇 거린다. 규현이 칼로 박스 끈을 풀면서 연신 아내 얼굴을 살핀다. 선물은 철재 간이 선반이었다.

가영은 너무나 실망하여 거의 비명을 지를번 했지만 입을 꼭 다물었다. 그래도 착한 남편이 실망할까봐 속내를 다 내 놓지 못한다. 규현은 아내가 그 선물을 받고 좋아 할 줄 알았는데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님을 알고 의아해 한다.

힘이 쑥 빠진 가영은 잘 못 하면 한 바탕 터질 것 같은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일찌감치 잠 자리로 들어간다. 철재 선반 조립을 다 마친 남편이 아내 방문을 두드린다. 언젠가 부터 그 둘은 각 방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순전히 아내 가영의 요구 때문이었다. “여보, 나 들어가도 돼?” “…” 안에서는 말이없다. 규현은 다시 한번 크게 노크를 하면서 아내를 부른다. “됐어 됐거든. 방에는 못 들어와.” 아내 가영의 목소리가 앙칼진 쏘프라노다. 얼떨떨한 남편은 아직도 자기가 사 온 철재 선반이 그렇게 아내를 부아나게 만들었는지를 잘 모른다. 그는 이 번 크리스마스에 아내 마음을 공중에 띄워주고 가끔씩 아내 방에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의 계획이 완전 무산되고 있다.

침대에 홀로 누운 가영은 전화기를 집어든다. “미옥아, 잘 지냈어? 나 정말 신경질 나 얘. 글쎄 우리 남편 알지? 그 맹맹한 사람. 결혼 생활 삽 십여년 지났는데도 아직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 글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서 코끼리 덩치만한 철재 부엌 선반을 사와서 조립하고 있구나. 기억나니? 오래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행주 치마를 사다주고 나 한테 된통 구박 받은 것. 참 기가 막혀 애구구, 나 못 살아.”

“화가 나기는 하겠다만은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일단 너를 생각해 준다는 것에 점수를 주렴.”

“무슨 소리? 늙으니까 영감 밥 해대기 귀찮아 죽겠어예. 여기는 밖에 나갈 일도 없고 완전 삼 식이 아니니… 너 이런사람 필요해? 덤으로 철재 선반까지 끼워줄게 데려가.” ”으 흐 흐 흐, 우리 집에도 비슷 한 사람 하나 있는데 그것으로 충분해.

가영은 거의 다 짜 놓은 남편 규현의 털 모자를 신경질적으로 코를 다 풀어버리고 만다. 남자는 영원히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여자는 왜 남자가 자꾸 아내의 방을 들어 오려고 하는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글 속에는 정말 그 해답이 들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