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했다.

금년 5월 말이었다. 요즈음 은퇴 희망 연령이 70세라고 하니 나는 딱 맞게 은퇴한 셈이다. 일찍 출근하기 위해 자주 알람을 해 놓고 잠 자던 내가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놀 수 있는는 지금의 내 모습이 어설프기까지 하다. 아직도 샵에서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흠짓 놀라기도 한다. 일이 그렇게 지겹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았던 것만큼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은퇴 후 지난 주 시애틀 아들 집을 방문했을 때는 처음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일을 했으니 내 생애 거의 50년은 일 해왔다. 이민 온 첫 해는 직장 잡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나를 얼마나 무섭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력서를 쓰는 것 조차 어설프던 그 시절, 모든 것은 내게 힘듦의 추억들이다. 캐나다 처음 직장에서는 영어 잘 못한다고 쫓겨나기도 했고 사업도 여러 번 실패하여 집을 날리기 까지 했다. 더 나은 것을 위한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 풀 타임 일을 다녀와서 공부하느라 12시 이전에는 잠을 잘 수 없었던 시간들 그리고 성취했을 때의 감격 또한 잊을 수 없다. 이혼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고 스스로 살아가기까지의 고난도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은퇴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첫 발걸음이라고 한다. 혹자는 은퇴 여행을 가고 싶다,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나의 제2의 인생은 은퇴 훨씬 이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나이를 먹어도 내게 무료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읽고, 쓰고, 그림 그리고, 사람 만나고, 친구들에게 맛 있는 것 먹여주고, 정원 일 교회 일 등등의 일거리는 무진장하다. 이것들은 나의 보고다. 그것들과 더욱 더 친해지면서 나의 남은 생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

아직도 건강한 상태에서 마음대로 자고, 먹고, 놀며 잘 걸을 수 있는 지금 같은 시간이 앞으로 내게 얼마나 주어질까? 지난 주에는 옷장을 열고 검정색 바지와 서브웨이 유니폼을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6년 넘게 입던 유니폼이다. 머리에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음식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위해 망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어디 볼일이 있거나 급하게 교회로 가야 할 경우 난감할 때가 수 없이 많았다. 또한 자기 스케쥴에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한 두 시간 전에 일 못 나온다고 연락하는 무책임한 직원들 때문에 당황하던 일 등, 이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 동안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가족을 빼고 나면 몇 안 된다. 내 스스로가 혹은 그들이 나를 떠나갔다. 나의 좁은 마음이 떠나간 이들을 모두 다 보듬고 가지 못 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들이 내게 준 상처를 나도 그들에게 주었을 텐데 나는 그것을 일찍 깨닫지 못했다. 이런 교훈은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서 느꼈던 서운함 들이 남이 똑같이 나로부터 느끼지 않도록 다짐해본다.

크리스 와이드너의 <피렌체 특강>이라는 책에는 다비드상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작업하고 있을 때 마침 근처를 지나던 어린 소녀가 미켈란젤로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돌을 두들기세요?”
“꼬마야 이 돌 안에는 천사가 들어있단다. 나는 지금 잠자는 천사를 깨워 자유롭게 해 주려는 거야.”
미켈란젤로는 바위 안에 갇혀있는 천사를 발견했고 원래 대리석 안에 들어있던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필요 없는 돌 조각들을 쪼아낸 것이다. 위대한 화가이며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세상을 환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갔다.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겨주고 갈 것인가?

비록 미켈란젤로처럼 아름다운 조각은 못 할지라도 나의 남아있는 시간을 마치 미켈란젤로가 바위 안에 갇혀있는 천사를 깨워 자유롭게 해 주었듯 나도 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천사를 깨워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그대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