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어가나 보다.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말을 하라고 한다. 나도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속상하게도 그 단어가 바로 생각이 안난다. ‘있쟎아, 그거’라고 표현할 뿐 우리말 단어도 생각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어 단어도 제깍 생각이 안난다. 클리닉에서 환자에게 이런저런 일을 설명하고픈데 단어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생각의 꼬리를 한참을 부여 잡고서야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에 생각이 난다. 그래도 그날 생각이라나도 나면 그래도 좀 나은거다. 며칠을 생각하는데 머리에만 빙빙돌고 안 튀어 나오는 녀석은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어허 큰일일세.

아침에 출근을 할때도 난리가 아니다. 손에 열쇠를 든채 열쇠를 찾으러 온 집안을 서성이며 왔다 갔다를 몇 번 하고서야 손에 있는 열쇠를 발견한다. 이런 경우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어쩌면 좋을까? 하루는 집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 전화가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 가고 있는 중에 냉장고를 열어 보니 그 자리에 전화기가 떡 하니 자리 하고 있는게 아닌가. 냉장고 안에 있는 전화기가 무척 얄밉고, 헐~ 소리가 나온다. 진짜로 나는 안 그럴줄 알았다. 난 그 정도는 아니야 라고 나이가 한참이 많은 언니들의 일상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어느덧 내 나이가 그 나이가 되어있다.

며칠전 친한 지인의’파킹장 맹순이’라는 짧은 일상을 읽었다. 큰 몰에 쇼핑을 하고 나오면 도대체 차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알길이 없단다. 지금은 원격 잠금키로 차가 어디 있는지 금방 알수 있지만 이전 엘에이 생활을 나누며 큰 파킹장에서 본인 차를 못 찾아 경찰까지 부른 에피소드를 소개 하였다. 그분 글을 읽으며 난 이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야 라고 하지만 언제 이 상황이 나의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을 할수가 없다.

건망증이 심한 영감이 길을 가다가 일어서면 툭 떨어질 곳에 자기 갓을 걸어 놓고 똥을 누었다. 똥을 누고 일어나니 갓이 떨어졌다. 영감이 “아따, 갓 하나 주웠다” 하고 돌아보니 똥에서 김이 나는 게 보였다. 그러자 영감은 “어떤 놈이 금방 거기다 똥을 누었네.”라고 하였다. 그 영감이 어느 집에 하룻 밤을 묵으러 갔는데 마침 중 한 명도 그곳에 자러 왔다
영감이 “중은 어디에 있는고?”라고 물으니 “아무개 절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감은 들은 내용을 금방 잊어버려 밤새도록 중에게 했던 질문을 또 했다. 중이 화가 나서 아침에 영감의 상투를 싹 잘라 놓고 도망갔다. 영감이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쓰다듬어 보니 본인이 중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영감은 “주인, 중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 갔소?”라고 물었고, 주인은 어이가 없어 “뭐라 했소?”라고 했다 영감 본인도 기가 차서 갓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 혹시 나요?”라고 했더니 욕을 하고 가 버렸다.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에 나오는 ‘건망증 심한 사람’의 에피소드다. 치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내 건망증이 치매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인간의 뇌는 20대를 고비로 점차 퇴행하여 나이를 먹음에 따라 뇌세포도 점차 위축된다고 한다. 한번 파괴된 뇌세포는 다시 재생되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뇌세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아 나이 변화에 따르는 감소로는 일상 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어떤 병적인 원인으로 뇌세포가 급격히 파괴되는 경우가 바로 치매이다. 치매는 기억에만 사소한 장애가 있는 건망증과는 달리 사고력이나 판단력도 문제가 생기고 성격까지도 변하지만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건망증의 경우는 단순한 기억장애일 뿐 다른 지적 기능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중년이 되니 거울을 보며 엄마의 모습이 비칠때나, 사진에 나오는 나의 모습에 당황할때도 많지만 그래도 제일로 안타까운 일은 하루 하루 이것 저것을 잊고 놓치고 사는 건망증이다. 그 중에서도 클리닉 환자에게 마땅한 단어가 바로바로 생각이 안나 완전한 문장으로 멋있게 설명해 주지 못하고 버버벅 거리는 내모습에 맘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나의 친한 캐네디언 친구가 말한다. Joy, please finish your sentence. 나도 문장으로 말하고 싶다고! 근데 딱 그 단어가 바로 생각이 안나는 걸 어떡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