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세찬 풍랑에 시달리는 때가 많았다. 가슴은 때 아닌 서리로 시렸다. 울 수 없는 고통은 세월이 가도 옅어지지 않았다. 세월호는 그렇게 내 육신안에 내려 앉아 떠날지 못했다. 관련된 뉴스조차 읽지 못하면서 막연히 허공을 향해 간절한 소망을 얘기했다, 살아남은 우리를 용서해 줄 것을…그리고 더 욕심을 내어 희망했다, 우리가 언제고 맘껏 깊은 슬픔을 토할 수 있게 되기를…

설상가상이라더니, 가을로 접어들면서 스산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설마, 아무려면, 사람이라면…하면서 나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헛소문 같았던 일들은 사실이었고, 거기에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놀랄 일들이 야수처럼 혓바닥을 내밀며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질서와 양심을 그 혓바닥으로 다 핡아서 삼킬 것 같았다.

세월호사건이 미궁에 빠진채 아직 주검으로나마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과 함께 저 바다에 같혀있는데, 거기에 나라일까지 이렇게 되다니…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것 같았다. 한나라의 살림이 몇 사람의 이기적인 탐욕에 의하여 망쳐져가고 있었다는것을, 순리를 따라서 사는 국민은 알 수 없었다. 과연 국민의 권력을 위임 받은 위정자들의 망국적인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고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짐승처럼 내 가슴을 때리면서 울고, 내가 할 줄 아는 모든 욕설로 그들을 모욕하고 싶었다. 나로서는 그 방법이 전부였다.

그런데, 세월호의 비극은 이미 시민들 자신이 나라의 권력자이며, 그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권의식을 각성시켜 주고 있었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지치지않고 거리에 섰던 시민들은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남을 지켜보며 국가적인 위기라고 판단했다. 날은 추워졌지만 국민들은 더욱 열렬해졌고, 그 뜨거움은 겨울을 녹였다. 새해가 되었건만 나라를 구하려는 시민의 아름다운 손짓은 멈추지 않았다. 참혹하도록 망쳐진 나라 살림을 살려내기 위하여 그들은 오직 촛불을 들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은 캄캄한 하늘을 향해 촛불을 들었다.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지치지 않는 순결한 열정이 광장을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그렇다! 촛불을 켠 아름다운 손짓은 광장의 은하수가 되었고 파도가 되었다. 그 곳에서는 놀랍게도 불의에 대한 분노가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그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은 거기에 머물 수 없었다. 그들은 외쳤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마침내 국민은 이뤄냈다. 실정자에게 책임을 물었고, 새로운 정권을 원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세월호 인양도 이뤄졌다. 나는 비로소 울 수 있었다. 세월호를 위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시를 읽을 수 있었고 기사도 읽을 수 있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아직 팽목항을 다녀오지 못한 부끄러움이 남아있지만…가야지, 다음에 한국을 나가면 꼭 가야지. 새로운 정권을 위한 대선도 급하게 시작되었다. 선거운동은 전국민을 향하여 치열하게 이뤄졌다. 나는 궁금했다. 국민의 원하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 국민은 어떤 정치적인 이념을 원하는 것일까? 국민은 어떤 경제적인 정책을 선호하는걸까? 국민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 대신, 약한 사람들의 편에서 청렴하고 품위있게 살아온 따듯하고 겸손한 지도자를 선택했다. 북한을 쳐부수거나 이겨버려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지도자 대신, 대화하고 상생해야할 상대로 생각하고, 궁극에는 하나가 되어야하는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했다. 가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의 향상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했다.

광장에 날 갈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미디어에 의존하여 마음을 보태왔던 나는,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까지 멈추지 않았던 숭고한 광장의 아름다운 손짓을 보았고, 그 손끝에서 처절하리만큼 빛을 내던, 촛불이라고 쓰고 희망이라고 읽는 국민의 선진적인 의식을 보았다. 그 희망은 지금 막 싹을 틔웠다. 그게 어딘가! 이제 시작이지 않은가! 나는 기쁘다! 내 조국의 동포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