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있자니 괜찮냐는 선생의 알량한 목소리가들려왔다. “제발 저리가. 혼자 있게 내버려둬.” 젖은 목소리를 알아챘는지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고, 난 겁에 질린 고양이처럼 교실 구석 매트위에 나를 뉘었다.
엄마의 동거녀는 나의 4살 생일파티 전날 사라졌다. 엄마는 마치 한 번도 웃어본적이 없던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차라리 엄마가 울었더라면 금새 끝나버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엄마를 웃게 만든 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옆 집 제니의 드레스가 마당에 날아들자 난 자석에 이끌린듯 그 옷을 입었다. 바지에 익숙한 두 다리는 드레스 밑자락 아래서 자유로웠고, 가슴에 수놓은 구슬장식은 햇볕에 반짝였다. “엄마, 엄마 날 봐요.” 엄마의 생기 없던 표정은 간 데없고, 숨이 넘어갈듯 웃어댔다.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그녀를 웃게했다는 사실은 나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 날 이후로 난 티셔츠 대신 엄마에게 드레스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의 화장대 앞에 서고 사라진 그녀의 구두를 신었다. 디즈니 공주들이 그려진 속옷도 입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색칠하는데 공들였고, 얌전해지려고 노력했다.
엄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이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다시 일에 몰두하면서 나는 데이케어 센터에 보내졌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노래하고, 이야기 할 수 있었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내가 화장실을 갈 때면 선생은 친구들을 모두 내보내거나 윗 층화장실을 나 혼자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얘들 없이 용변을 보는 일은 고요했고 엄숙했다. 내게는 엄마나 계집애들에겐 없는 고추가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은 모두 나를 ‘그녀’로 지칭한다는 것을. 처음엔 이 모든 일들이 우스꽝스럽고 즐거웠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영화속에서 보던 영웅들의 삶일거라 믿었다. 내가 약해빠진 계집애들과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그 시선들은 나를 쫓기 일쑤였고, 표정은 일그러졌다. 난 단지 내가 보던 영화 속 악당들의 말을 흉내냈을 뿐인데, 그들은 나를 벤치에 앉아있게 했다. 내가 단짝친구 조이에게 드레스속 나의 비밀을 보였던 날, 선생은 꽤나 오랫동안 나를 세워두고 엄마와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나는 헷갈렸다. 내가 선택한 이 선택에 대해..
어느 더운 여름날 아침 찝찝한 기분으로 일어났고,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운동장에 흩날리던 마른 흙먼지는 배어나온 식은 땀에 들러붙었지만, 딱히 씻어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고집을 부려 책상앞에 홀로 앉아 간식을 먹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보았다. 같이 화장실을 쓰는 게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닌듯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해본 적은 없었지만, 난 과감하게 행동에 옮겼다. ‘왜 난 이 편리함 대신 늘 위층 화장실을 썼을까?’ 혼잣말을 하는 동안 망가진 수도관이 케켁거리며 거칠게 물을 뿜어냈다. “물 잠가. 어서!” 바깥에서 선생 하나가 끝임없이 외쳐댔다. 나는 어떤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지 아주 잠시 혼란스러웠고, 어느새 교실 로 끌려나왔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손을 씻었을 뿐이라고. 뭐가 문제야? 난 겨우 6살이잖아! ‘ 나는 나오지 않는 말대신 그들의 거친손에서 벗어나려고 주먹을 쉴새없이 휘둘렀다. 손끝에 걸리는것들을 움켜지려는 순간 우왁스러운 손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나는 그제서야 교실바닥 한가운데 누워 요동치던 심장을 식힐 수 있었다.
영웅들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나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