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손님들과 하루 나들이 나갔다.

그 중에 언니도 끼어있다. 예전에 한 번 가 본적이 있는 이곳에서 유명한 Point No Point로 방향을 잡았다. 중간에 잠시 자동차를 멈추고 Potsholes 쥬립공원에 들렀다. 물이 맑고 그리 차지않아(사진 3번째) 발도 담그고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여름의 휴식을 잠시 취해본다.

계속 올라가 Point No Point에 다달았다. 식당에서 점심을 잘 먹고 해변가로 내려갔다. 이곳은 식당을 이용한 사람만이 해변으로 내려갈 수 있는데 식당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코드 번호를 받아야 문을 열 수 있다. 언니와 함께 우리 네 명이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는데 엉덩이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면 좋을 나무가 눈에 (사진 4번째)띄인다. 요리저리 폼을잡아 사진 몇장을 찍고 내려가니 언니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언니는 몇 년 전에 은퇴했는데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해서 여간 고민이 아니다. 걸을때도 내가 손을 잡고 걷는다. 특히 계단이나 돌 위를 걸을때는 더 주의한다. 우리 가족은 언니의 눈이 나빠질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면서 여러 방도를 구하고 있는 입장이다. 글씨 읽기가 어려워 카톡도 주위 사람들이 읽어주고 대필해서 내보내고 있다.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아직은 그런데로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언니는 시력이 지금만큼이라도 유지하며 살다 가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지내고 있다.

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함께 간 분들과 언니를 찾기위해 아래로 내려가보니 길이 여러갈래다. 흠. 이쪽으로 갔을까 저쪽으로 갔을까하면서 계속 끝까지 가 보니 (사진 2번째) 더 이상 길이없다. 다시 돌아온 길을 되돌아가면서 길을 다 뒤진다.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하니 그곳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고 나온다. 하이고야~ 우짤꼬~

눈도 뚜렷하지 않는데 길을 잃고 헤멜 언니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내가 사진을 찍지말고 언니 손을 꼭 잡고 다녔어야하는데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른다. 한참을 마음졸이다가 혹시나하고 자동차로 가 볼 심사로 식당입구로 올라가 허겁지겁 자동차 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엘리샤”하는 언니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언니가 빨간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니는 벌써 해변가 내려가서 한 참을 시간 보내다 나를 찾지못해 다시 혼자 걸어왔단다.  나는 마치 길 잃었던 자식을 찾은 심정으로 언니를 끌어안았다. 뛰던 심장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언니, 이 의자에 나와함께 기념사진 한장 찍어요.”

“그러자. 혼자 걸어올라오는데 약간 무섭기는 했어.” 라며 언니가 조용히 웃는다.

간호사로 35년동안 미국에서 열심히 일해왔고 더 없이 명랑하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던 언니가 힘없이 걸어가는 뒷 모습을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언니 나이는 75세, 요즈음 나이로는 건강하게 살 나이다.

“내가 엄마한테 더 자상하게 못 해 드린것을 후회한다. 내가 늙어보니 늙는 것은 서럽고 힘들며 어디든지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데 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했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언니, 젊었을때는 우리 모두 철이 없잖아. 언니뿐만 아니고 우리 모두는말야. 그래도 언니는 엄마를 끝까지 모시고 살아왔으니 그것으로 다 보상받은거야. 더 힘들때 우리집에와서 나와함께 살어. 내가 언니의 길 동무가 되어줄테니.”

언니는 지금 잠이들어있다. 세상에 핏줄만큼 강한 것이 어디있으랴. 언니가 살아있을 동안  나는 내 사랑을 언니에게 퍼부어줄 것이다. 혹 언니가 먼저 세상을 뜬다해도 그리 서러워하지 않기위해.

우리는 다 늙어간다.

나도 조금씩 늙어가니 저세상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살아있는동안

더 많이 남을 이해하며

더 많이 남과 나누며살다 가리라

언니 손을 꼭 잡고 다닌 하루는 내 추억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