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르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었다.

이 책은 1776년 가을부터 1778년 7월2일 뇌출혈로 사망하기 전까지의 글을 모은 것이다.

장자르크 루소는 스위에 제네바에서 태어났으며 출생 직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많은 유명한 사람들의 생애가 그리 평탄하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본다. 지난 주 Anne of Green Gable을 쓴 작가 몽고메리도  2 살때 엄마가 죽고 조부모 밑에서 컸는데 고난이 축복인지 정식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더 큰 일들을 해 내고 있음을 보게된다.

“사람들과 운명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자. 투덜대지 말고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자. 모든 것이 결국에는 순리를 따르게 되어 있으니, 조만간 내 차례가 올 것이다.”

“인생으 종점에 다가가고 있는데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좋은 일도 하지 못했다. 좋은 의도는 있었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생각만큼 쉬지 않다. 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도움을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아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그들 중 한 인간의 이미지를 충실히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경기를 시작해 죽어서야 벗어난다. 경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차 모는 법을 더 자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때는 이제 거기서 어떻게 뻐져나와야 할지 궁리하는 일만 남는 것을. 노인의 공부란, 그에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오로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일진대, 내 나이의 사람들이 가장 하지 않는 일이 바로 이 공부로, 그들은 이것만 제외하고 온갖 일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노인들은 어린아이보다 더 삶에 집착하여, 젊은이보다 더 마지못해 세상을 떠나간다. 그들이 겪은 모든 고된 일이 바로 이 삶을 위한 것이었는데도 마지막에는 그것이 헛수고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정성, 온갖 재물, 고된 밤샘으로 이뤄낸 성과들, 떠날때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간다. 사는 동안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얻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루소는 유한한 인간에게 적합한 행복의 가능성을 이처럼 자아의 회복이라는 문제와 직결시켰다. 루소에게 행복은 자아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루소는 계획적으로 마음에 악을 품게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자족적인 행복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한 철학인이었다.

존재의 본질을 체험하는 몽상이야말로 자기 외부에 있는 모든 것, 남의 시선이나 평판과 무관하게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자아의 향유다. 루소의 마지막 글쓰기는 몽상의 글 쓰기여야 했다. 즐거움과 고통, 분노와 회한, 치유되지 못한 영혼의 상처, 지나간 온갖 경험이 혼란스럽게 아무때나 정신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노년의 시기에, 루소는 자연 속에서의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인지, 가장 행복하고 쓰로 만족하는 때가 언제인지를 성찰하며 살았다.

루소는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막 시작해놓고는 체 끝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모든 불행을 비워내고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의 자신을 발견한 루소는 그것을 몽상의 글쓰기를 통해 연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사랑했던 바랑 부인과의 기억 속에 있는 자신을 회상하는 일은 루소의 마지막 즐거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있다. 내가 죽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밤에 내게 주어진 숙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림 두 점 그렸습니다. 더 손질 안 해도 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