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그린 그림 Touch Up – 30″ x 40″ (76cm x 1m) Joy of the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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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 빅토리아 엘리샤예요. 박나리 시인과 통화하고 싶은데요” 전화를 받던 남편이 머뭇 거린다.

“어머나, 일 터에 전화 드렸군요. 나리씨 핸드폰 번호를 받을 수 있나요?” 역시 남편이 말을 못 한다. 느낌이 이상하다. 혹시 이혼했나부다. 아님 한국에 오랫동안 여행갔는가? 여러가지 생각에 머리가 잠시 복잡하다. 항상 나 보다 먼저 전화오던 분이다. 어제 갑자기 그녀의 시집 ‘깨 볶는 오후’를 집으면서 그녀 생각을 했었고 곧 바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저, 저기 저기요.” 남편은 말을 못하고 계속 저기 저기라고만 말 하더니

“우리 집 사람 세상 떠났어요.”라한다. 이게 무슨 날 벼락인고. 아직도 나이가 까마득한데.

“사고예요. 병이예요?”

“간 암으로 3 개월동안 고생하다가 갔지요. 한국에는 치료가 가능하다고해서 갔지만 역시 똑 같은 대답이었어요. 공연히 고생만 더 시킨 샘에지요.” 작년 12월 만 61세였단다.  마침 약혼자가 있었던 둘째 딸 서둘러 결혼 시키고 6일만에 갔다니 딸 결혼 시킬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태어나지 않은 손주 반지까지 다 마련해 놓고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갔다면서 남편은 울먹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의 시집을 다시 들어 그녀를 보는 듯 시를 읽어내려 간다. 2009년 한국일보 제29회 신춘문예 수상 / 2010년 제13회 해외문학상 / 2012년 미주 한국일보 제 33회 문예공모전 장려상 / 2012년 제14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2012년 3월 좋은 생각 이달의 시 발표 /

다행히 두 딸(결혼)과 한 아들(미혼)을 훌륭히 키워놓고 갔으니 이 세상에서 할 일은 다 하고 간 셈이나 젊은 나이에 간 것이 너무나 아쉽다.

시집 제목에 나온 시 한 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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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깨 볶는 오후

그녀는

사랑으로 다듬고 정성으로 깨를 씻어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공부하다 돌아오는 아이에게

손질이 많이가는 나물반찬을 먹이기 위하여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하게 깨를 볶고 있다

따다닥 소리를 내며 가출을 해버리는 놈들도 있다

미리 포기하는 걸까

나무람과 걱정의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조금만 더 뜨거움을 참으면

영양 가득한 고소한 깨소금이 될 텐데

참기름은 곧 다가올 미래를 윤기 있게 해줄 텐데

아이는 알고 있을까

지금의 이 뜨거움을 참고 견디면

나물반찬의 맛을 좌우하는 고소한 깨소금으로

또는 참기름이 된다는 것을

이리저리 바삐 나무주걱을 뒤적이며

엄마의 사랑으로 프라이팬을 달구어

세상의 고소한 향기나는 사람이 되라

그녀는

부지런히 사랑 볶는 오후를 보내고 있다.

** 고인의 명복을 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