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안 에세이 ‘월하의 마음’을 끝냈다.
김향안은 스물에 첫 남편이었던 시인 이상의 임종을 위해 12시간 기차를, 8시간 연락선을, 다시 24시간 기차를 타고 도쿄(東京)의 병원을 찾아갔던 당찬 여인이었다. 28세에는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수화를 만나 재혼했다. “내가 먼저 가 터를 닦은 뒤 부르겠다”며 1년 먼저 파리 유학을 감행한 이도 그였다. 국내 최초의 작고화가 기념관인 환기미술관도 수화 사후 18년에 걸친 김향안의 집념과 열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정말일까? 모두가 그렇게 사랑하고 있을까? 닿으면 손이 델 듯 뜨거웠던 눈빛이 미지근해 지고, 하루만 못 봐도 애탔던 연인을 한 달 넘게 못 만나도 무덤덤해지는. 그 과정을 받아들여 가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게 무슨 사랑이야. 정이지.’
화가 김환기는 그의 아내 김향안은 떨어져 있을 때마다 남편은 그새를 못 참고 편지를 썼다. 남편이 먼저 죽고 난 뒤에 아내는 남겨진 작품을 돌보며 죽는 순간까지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흔적은 부암동 자락에 ‘환기미술관’으로 남았다.
김향안의 수필집 말미에는 수화의 작고 20주기를 맞은 날의 짤막한 감회가 실렸다. “…고로와즈(수화가 즐겨 피운 담배) 피워놓고 꽃다발 놓고… 나는 햇볕이 뜨거워서 단풍나무 그늘 아래로 갔다. 20년이 흘렀다. 나도 쉬고 싶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것은 김향안의 섬세한 마음이다. 함께 살던 남편 김환기는 느끼지 못했던 아내, 엄마만이 느꼈던 고통들도 고스란히 적혀있다. 여기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주제가 ‘물’이다. 이 글은 부산 피난민 시절 얘기다.
<양철통들이 서로 부딫치는 소리와 여편네들의 아우성에 섞여 남자들의 굵은 목소리가 무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을 어렴풋이 귓가로 들으며서도, 또 물이 나오는 거로구나 하는 의식과 는 반대로 종일 피로가 엄습하여 수면 속으로 자꾸만 잦아들었다. 봄내 여름내 수도가 안 나와서 숫제 식수 구걸을 하다시피 그렇게도 물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밤중에라도 물 나오는 것이 다행한 일이기는 하다. 어찌된 일인지 이 달포째 들면서는 제법 거르지 않고 사흘 걸려 수돗물이 나오는데 꼭 한밤중 사람들이, 주로 부인네들이 단잠을 자다말고 일어나서 물을 맏아야만 하게 되었다. 피난살이에 저마다 기구가 넉넉지 않으니 물 나올 적에 빨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거의 한 달을 계속해서 사흘 걸려 밤에 잠을 못자고 나니 건강에 지장이 생기고 말았다.
저 여편네들의 아우성에 섞여 남자들의 굵은 목소리는 무엇일꼬, 차츰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들려 오는 소리를 귀담아 보니 남자들의 굵은 목소리는 여자들이 조용히 물을 받지 않고 아귀다툼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 여편네들을 꾸짓는 목 소리였다. 어느 민의원 출마 연설에도 이 여성들의 물 고생을 해결해 주겠다는 갸륵한 대목은 없었다. 왜 하필 밤중에 물이 나올까? 왜 남자들은 이런것을 해결해 줄 생각을 안 하고 허구헌날 여편네들의 물타령 물싸움에 진절머리를 낼까? 한길 바닥에서 나오는 물을 받을 적에는 한 방울씩 괴는 물을 기다려 받기 위해서 추운 겨울날 기나긴 밤을 덜덜 떨면서 길바닥에서 날을 밝히는 일도 있었다. 홍수라도 좋으니 정말로 이 세상에 그런 물세계가 한 번 이루어져 봤으면 좋겠다.>
요즈음 우리는 더운물 찬물 넘치도록 쓰고있는데 나부터도 이 고마움을 알기나 할까? 다시한번 모든 편리한 세상에 살고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귀한책을 잘 보았다. 빌려준 친구에게 고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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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기쁜 일이다. 할아버지네 파트타임 날짜가 변경되어 오늘 일 다녀왔다. 이제 날이 빨리 어두워져서 밤이 일찍온다. 높지는 않지만 말라햇 산 길을 내려오기때문에 어두워 신경이 쓰인다. 늦었지만 작은 캔버스에 닭 한 마리 또 올려놓고 자리에든다. 내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이 기다려줄지 큰 기대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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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th Island Night (Solo)
피성희 – Never Ending Story.
손댈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면 마치 날 떠나 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가 추억에 남겨져 갈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너는 떠나며 아침을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가 추억에 남겨져 갈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