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는 매우 다양합니다.

매일 똑 같이 해가뜨고 지구가 돌고있지만 접하는 일 들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에갔고 엄마는 회사일로 전화를 받을 일이 있어서 출근이 늦으셨다고 해요. 할머니가 엄마 출근길을 ride 해 드리는데 평소에는 집 가까운 곳 기차역까지만 ride 해 주는데 엄마가 할머니에게 “오늘은 늦어서 회사까지 데려다 주시면 고맙겠어요.라고 했답니다. 할머니는 쉽게 그러자고 하면서 엄마 회사까지 자동차를 몰고 갔다지요.

회사 앞에서 엄마는 할머니에게 “프리웨이 5번 타시고 가면 됩니다.” 라며 뒷 자동차들 때문에 성급히 내렸데요. 할머니는  “알았다”며 대답은 했지만 시애틀 한 복판에서 5번 출구를 찾는것도 한참을 돌고 돌았답니다. 시애틀은 one way가 많아서 머릿 속으로 생각한 거리에서 돌릴 수 없는 때가 많거든요.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대 도시의 자동차 홍수 왕복 12차 선에서 사인을 잘 못보면 한 없이 딴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할머니는 우리집 출구를 놓쳐서 (A와 B의 혼선으로) 긴 긴 다리로 들어갔습니다. 다리가 끝날 때 까지 꼼짝없이 앞으로만 전진해야 했던 그날의 악몽이 되 살아나는 듯 하여 머리가 쭈빗거렸다고 합니다. 프리웨이 5번 사인이 나오길래 반가워서 그 줄에 서니 Spokane가는 길 명시만 되어있고 South, North 표시는 없었답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spokane 이 남쪽인지 북쪽인지 갑자기 머리에 떠 오르지 않아서 그냥 패스하고 로컬에서 생각할 시간을 벌기위해 조금 더 갔다고 합니다. 그런 후 잘 생각해 보니 Spokane이 북쪽으로 갈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고 되 돌아 Spokane 쪽을 탔는데 조금 더 가니까 Vancouver B.C. 사인판이 나오더랍니다. 밴쿠버 쪽은 당연 북쪽이니까 우리집 오는길이 확실 했다지요.

우리집 출구를 놓칠까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른쪽에서 두번째 줄을 따라 갔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어려움없이 우리집 출구를 만나서 어려움 없이 돌아오셨습니다.

할머니는 가시기 전에 내 옷을 완성시키느라 오후 내내 제 옷을 만드느라 시간을 다 할애하셨어요. 제게 여러번 입혀보시면서 만드셨는대도  마지막에는 지퍼가 약간 맞지 않아서 다시 고쳐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이 옷은 작아저도 버리지 말고 기념으로 잘 간직해라.”고 말씀 하셨어요. “저도 꼭 이옷 잘 간직해서 제가 나중에 제 아이들에게도 할머니 얘기를 할 꺼예요.” 했습니다.

저의 이 말을 듣고 할머니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셨답니다.” “아고고 요것이 너무 앞서가지 않나. 지가 아직도 어린 꼬마인데 먼 날의 일들도 그림이 그려지는 가보네. 나는 저 만할때 사탕이나 물고 엄마 젖 무덤에서 헤매곤 했는데 참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빠르다.”

할머니와 치과병원 놀이도 했는데 제가 치과의사이고 할머니는 환자였어요. 제가 할머니를 침대위에 뉘여놓고 이빨을 점검하는데 치과병원에서 본 대로 “아, 입을 벌리세요.”하면서 “아이고나 이빨이 썩었네요. 사탕을 많이 잡수셨군요. 브로커리나 샐러리등 야채를 잡수셔야지 사탕이나 초코릿은 좋지 않아요.”라며 나무랬습니다. 이 얘기는 제가 엄마한테 매일 듣는 얘기들입니다.

또한 우리 네 명이 (엄마 아빠 할머니 지원) 숫자 카드놀이와 말 없이 몸과 팔다리 움직임으로 정답 맞추기 그리고 책 읽기등으로 알찬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엄마의 선물로 할머니가 올림퍼스 스파에 가시게 돕니다. 할머니가 이곳에 오시면 엄마가 언제나 이곳으로 모시고갑니다.

할머니와의 즐거운 시간이 내일 하루 또 남았습니다. 저는 또 내일을 기대하며 자리에 듭니다. 여러분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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