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가을 – 손녀 학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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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조금 무거운가?
이번주 아들집에가서 일주일동안 있는 동안에 물론 손녀와 즐거운시간도 가졌지만 아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들은 늘 말이 별로없고 단답형인데 그도 나이를 먹고 자식을 키우면서 뭔가 인생의 행로에대해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사람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보아야 부모 심정도 알고 타인의 입장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가보다.
“엄마, 게 알지요?”
“그럼 알지.” 아들이 말 하는 오랫동안 잘 아는 아이다.
“그러니까 엄마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쯤 됐을꺼예요, 어느 날 밤 그 아이가 울면서 S.O.S.를 쳐왔어요. 너무나 긴급한 사정이 생겨서 도움을 청한다고, 나는 그 다음날 아침 바로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묻지않고 그 아이가 말하는 내 나이로서는 조금 큰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어요. 그런데 금년 초에 그 아이가 형편이 나아졌다고 그때 너무 고마웠다며 내게 수표를 보내왔어요. 내가 보내준 금액보다 조금 더 많이요.”
“뭐야? 그아이한테? 게네 집이 얼마나 부잔데… 너에게 부탁했단 말이냐?”
“엄마, 생각해봐요. 아무리 부모가 부자라도 자식이 그 부모에게 부탁 못 할 입장이면 그게 누구의 책임이겠어요?”
“으 음. 그렇지 말 해봐도 안 될 것이 뻔 하니까. 그러나 너 참 잘 했다. 아주 좋은 일을 한 거야. 게가 너를 택한 것은 너의 무거운 입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엄마, 내 주위에도 부모가 자식과 허심탄회하게 키우는 부모가 많지 않아요. ‘늘 안된다.’ 혹은 기대에 너무 벅찬 소망, 이런것 들 때문에 자식은 기를 피지 못하지요. 언제나 거짓말을 하게되고요.”
부모는 왜 자식을 이해못할까?
부모도 그 세대를 지나왔을텐데 자식을 이해 못하는 부모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릴때는 많은 시행착오를 갖기 마련이다. 자식이 혹 잘 못 판단을 했다 하더라도 그가 커다란 구렁텅이에 한번 쳐 박혀보면 자식도 스스로 깨닫게 되며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된다. 혹 결과가 좋지 않았다해도 그것은 우리 삶에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후회하고 괴로워하면서 조금씩 삶을 익혀가는 것이 인생이다.
부모는 자식의 어떤 경우라도 늘 칭찬해주며 격려해주고 또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저런 핑게로 부모로부터 멀리 떠나려는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아주 일찍 결혼이라는 핑게로 집으로부터의 탈출을 한 사람이다.
언제나 포근하고 행복한 부모가 그리웠던 내 어린 시절, 그나마 나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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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Art 지난번에 동영상이 안 올려져서 못 보여 드린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