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부터 아는이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오래전 총각시절부터 미국으로 유학와서 지금은 탄탄한 기반을 잡고 잘 살고있는 분이다.

무슨 소설책 한권을 읽는 듯 한 애틋하고 가슴 얼얼한 얘기다. 옛날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거의가 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있기는 하다. 

“우리 엄마는요 9남매를 낳으셨어요. 거의가 다 울 엄마가 키웠지요. 할아버지는 땅을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전혀 가정을 돌보지 않아서 엄마가 그 많은 농사일을 하면서 자식들 거두느라 불쌍하게 사셨어요. 쌀을 팔러 장애 가실때는 어린나를 업고 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요 때로는 한 손으로는 보따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또 한 보따리를 들고 가시곤 했지요. 막내인 나는 늘 엄마 등에 매달려 다녔구요. 집에서 장터까지 가는데 개울 건너고 산등성 너머 너머 한 시간 족히 걸어가셨지요. 왕복 이니까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오실때는 식구가 많으니까 꽁치 한 상자와 기타 반찬거리를 사서 또 머리에 가득 이고 오셨지요. 

다행히 엄마는 학교시절 육상선수였어요. 체격은 작았지만 단단하셨어요. 한번도 힘들다는 얘기 안 하시고 늘 긍정적으로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지요.   

“와우 정말 힘드셨겠네.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 가셨고?”

“으 흐 흐 울 아버지는요 백구두 신고 서울로 휘리리 날라가면 한 일년 후에나 집에 오셨지요. 꼭 아플때 와요.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다들 살얼음이었구요. 공연히 신경질 내고우리들에게 친절한 말 안해주셨어요. 형제들이 다들 나름대로 숨어있었지요. 아버지가 다시 집을 나가실 때까지 집안은 고요했답니다. 아버지가 떠나시면 휴~ 모두들 숨을 크게 쉴 수가 있었어요.”

“돈은 어디서 나서 그렇게 돌아다녔나?”

“돈요? 어 허 허 허, 그게 참 미스테리예요. 여자들이 돈 없어도 아버지를 환영했다니까요. 그러니까 뭐 돈 보다 좋은 것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엄마와 전쟁이 일어났겠네?”

“아뇨. 전혀”

“어째서 엄마는 그렇게 천사야?”

“내가 한번은 엄마에게 물었죠. 엄마는 자존심도 없냐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도 니들 애비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돈 훔쳐 나가지도 않고 집에와서 좀 다정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나를 때리지도 않고하니 내버려두렴.”

“그런데 가끔씩 들어와서 한 열흘쯤 있다 다시 집을 나갔는데 우리 형제가 아홉이나 된 것을 보니 참으로 부부란 알 수 없는 가봅니다. 아니 남자… 남자가 문제죠.” 이렇게 말하고 그니도 베시시 웃는다.

“아버지는 완전 영국신사처럼 하고 다니셨는데 모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내가 고등학교 쯤 됐을때 정류장에 서 있으면 여자들이 내 곁에와서 먹을것도 건네주면서 “네가 아무게지?” 애교를 떨곤 했는데 그 여자들이 바로 우리 아버지와 섬싱 섬싱 그런 사인것 같았어요. 엄마는 모든것을 모른체 하고 다니시더라구요.”

“부모님은 아직도 살아계신가?”

“아뇨, 아버지는 늙어 힘 없으니까 그것이 너무 억울한지 또 팔팔뛰셨죠. 누가 늙으랬나? 우린 그렇게 생각들 했지만 아무말 안 했지요. 내가 한국에 들어가니까 오토바이를 사 달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왜 오토바이냐고 물으니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그런다고 하셨어요. 그래 제가 오코바이 하나를 사 드렸더니 그걸타고 온 동네를 부르릉 거리며 다니시더라구요. 평생 활개치고 다니다가 이제 패기처분이 된 노인네가 됐으니 여자들이 문전박대 한거죠.”

그니의 어머니는 구십을 훌쩍 넘기고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겠시는데 이 아들이 매달 충분한 돈을 보내고 있다. 엄마 얘기를 하면서 “불쌍한 울엄마…” 드디어 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애구구. 어떻게 아버지가 그렇게 가정을 내팽게치고 다닐 수 있었을까? 양심이라는 것을 어디다 저당 잡히고 살아갔는지. 엄마를 지극히 봉양하는 그니의 갸륵한 심성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니의 어머니가 자식들로부터 환대받으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니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 안다 누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 가는지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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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0도 / 종일 비 / 일 다녀옴 / 내일은 우리 목장예배가 우리 집에서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