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남은 생애에 꼭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것들을 적어놓고 실천하려 애쓴다. 존 밴빌의 소설 ‘바다'(문학동네)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형태,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 조수가 이상한 날이었다. 로 시작되는 이 소설을 쓴 작가 존 밴빌은 어렸을 때 문학 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나 건축가가 되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에는 종종 가지 않은 곳의 향수가 종종 묻어난다.

이 소설 ‘바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그림들은 5점이다. 우선 보나르의 그림이 가장 많다. 그 중에 하나인 <자화상>을 보자. 주인공 맥스는 거울 앞에서 노년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말년의 보나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린 ‘자화상’들을 떠올린다. 야윈 얼굴은 반 고흐의 자화상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본인이느끼는 정조는 보나르의 그림에 더 가깝다. 보나르의 ‘욕실 거울속의 자화상’은 추례한 노인의 알몸 상반신이다. 무엇 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움푹 들어가고 거무스레한 눈두덩이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평이해 보이지만 그 그림 속에는 섬세함과 슬픔이 들어있다.

화자는 어린 시절 그 해 바닷가에서의 그 사건 이후 봉인되었던 과거의 한 세상을 다시 해제시켜 반추하고 동시에 이후 그가 겪었던 이런저런 인생사의 굴곡과도 대면하면서 가까웠던 이들의 애환과 그들의 상실에서 표현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애감을 보나르의 부드러운 색조처럼 온화하게 어루만진다. 그가 다다른 것은 이제 평온한 또 다른 세상이다. 마지막 문장인 “마치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이 그는 그  세계로 서서히 진입해 들어간다.

‘바다’의 이야기는 몇 문장으로 요약 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다. 무엇 보다도 얇은 종이에 고요하 물감이 겹치며 번져나가듯 소설을 읽는 사람 속으로 스며든다.

인생은 알수 없는 모호함으로 만들어져 있다. 인생에서 이렇다 할 확증적인 것이 있을까? 나의 인생을 뒤돌아 보아도 두죽박죽 어찌어찌 살아온 듯 하다. 차분히 생각할 여유는 지금처럼 늙어 이 시간에 와서다. 나의 과거는 비록 슬픔이 많았지만 그 것도 내게는 천금같이 귀하게 여겨진다. 더 없이 소중했던 삶이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보지 않았던 그 어느곳으로 도 달려가 볼 참이다. 또한 하지 못했던 괴상한 일들도 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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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2005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쓸 당시 밴빌의 나이는 59세였고 그의 열네번째 장편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비평가들에 의해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스타일리스타’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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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8도 / 종일 비가오다 / 오랫만에 수영다녀오다. 수영장에 아직 연휴 기분이 남아있는지 물 속에 나를 포함해 겨우 4 사람만이 수영을 했다. 앨런선생이 와서 계속 부엌고치는 일을 하다. (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을 벽에 거는데 거의 종일 걸렸다. 상당히 복잡하다. 팬에서 공기를 빼기위해 집 밖으로 구멍을 뚫어야 했다. 설치하고나니 보기에 참 좋기는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