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한 친구가 지난 달 22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오래 경영해 왔던 친구였다. 고등학교때 까불까불 까르를 잘 웃던 마음씨 착한 친구였다. 나를 포함한 네 명중 이 친구가 일 착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남은 우리 셋이 “우리가 이런 나이가 됐네…”라며 슬퍼했다.
작년 24일 친구의 장례를 치루었다는 친구 남편의 카톡을 받고 큰 충격 받았다. 장례치룬 나흘 후 조심 스럽게 전화를 거니 친구 남편이 받는다.
“많이 상심 되시지요? 나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내가 친구 남편에게 말했다.
“아, 네… 2년 전 암이 걸렸었는데 완치 됐다는 소리에 기뻐했는데 한 일 년 후 다시 재발되어 힘든 방사선 치료를 거쳤지만 결국 떠났습니다. 편안하게 갔어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내가 이렇게 말 하는데 친구의 남편이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시카고에 아이들 (딸 셋)과 함께 식당에서 밥 먹으로 들어왔어요.” 하면서 큰 딸을 바꿔준다. 나는 친구의 아이들과도 자주 만다던 사이였다. 친구가 살던 곳은 시카고에서 약 다섯시간 남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줌마, 우리 저녁 먹으로 왔어요.”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뭔가 섭섭했다. 울먹이려는 내가 머쓱했다고나 할까. 나는 가족들이 얼마나 상심하고 있으며 또한 슬퍼서 전화로도 함께 울것을 기대했는데 모두들 목소리가 명랑하고 엄마나 아내의 죽음에대한 애석함을 느끼지 못했다.
“뭐야? 이건 너무 하잖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간다해도 장례치루고 나흘 밖에 안 됐는데,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나는 가족들에게 괘씸죄를 적용했다. 물론 운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세상은 많이 변했다. 우리 중에 가장 착하고 공부도 제일 잘 했던 친구, 열심히 자기일에 충실했던 친구를 그리며 이 글을 쓴다.
슬프고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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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9도 맑음 / 포근한 느낌 / 수영다녀옴 / 성경보기 / 저녁 9시 교회 금요기도회 참석 – 특별강사 초청이 있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