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에서는 벌씨 이렇게 튜립을 키워 내고 있다. 아직 완공되지 않고있는 부엌이지만 따뜻한 분홍 빛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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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분이 채현국 선생을 소개하여 그분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채현국 이사장의 “쓴맛이 사는 맛”이란 말이 참으로 내 뇌리에 명쾌하게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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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한겨레> 4일치에 실린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놓고 SNS에서 반응이 말 그대로 뜨겁다.

"언제나 변함없이 참 소탈한 모습입니다"라며 채현국 이사장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언제나 변함없이 참 소탈한 모습입니다”라며 채현국 이사장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채 이사장은 1960~70년대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 탄광’을 경영하며 한때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을 돈을 벌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자들과 달리 유신 시절 쫓기고 핍박받던 민주화 인사들을 도와주거나 직원인 광부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채 이사장의 부친인 채기엽 선생도 일제 강점기 시절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켰고 그 돈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줬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그는 “재산은 세상의 것인데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며 이를 삶에서 실천해 큰 울림을 줬다. 1950년대 배우 이순재와 서울대 연극반을 만든 것에 대해서도 그는 “교육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가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글자를 몰라도, 지식이 없어도, 감정적인 형태로 전달이 되고…한류, 케이팝도 엄청난 ‘대중 혁명’이라고 본다. 시시한 일상, 찰나찰나가 예술로 승화되는 멋진 일”이라고 했다.

채 이사장은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를 위해 내놓고 현재 경남 양산 개운중·효암고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을 하는 그를 학생들은 잘 알아보지 못 한다고 한다.안도현 시인은 지난해 말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채 이사장에 대해 “(학생들이) 저 할배는 뭐 하는 분이지? 허름한 옷차림에 낡은 신발을 신고 모자를 눌러쓴 채 교정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는 한 노인에게 교사들이 꾸벅 절을 할 뿐이다…선생에게 세간의 권위 따위는 검불에 불과하다”고 묘사한 바 있다.채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는 현재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채 이사장의 ‘어록’들이 공유되고 있으며, “오랜만에 ‘참인간’을 접한 것 같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 “광부들이 다치고 가정이 깨지는 것을 보아왔다. 죄송하다는 말로는 염치가 없다. 돈 많이 버니 미쳐가더라.”

유트브에 채연국을 치면 이 분의 삶에대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나도 돈을 벌어서 이런분 처럼 쓰다 가고 싶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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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9도 맑았으나 저녁에는 비가 옴 / 커피솝에서 트레이닝 계속 중 (이제 많이 익혔음) / Moen 상표 수도꼭지 3개를 코스코에서 사옴 이것은 Life time warranty 라고 하니 내가 죽을때 까지 쓸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