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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지금처럼 이른 봄이었다.
그가 내게 “영어 구문론을 좀 빌려줘”라며 말을 걸어왔을때. 그 해 초 봄은 얄미운 게집아이처럼 쌀쌀하고 매몰찼다.
그가 내게 이 말을 했을 때 내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자기 집에 ‘영어구문론’이 없을리 만무한데 내게 그것을 핑게로 말을 붙여온 그의 음성도 떨리고 있었다.
어렵살이 마련한 첫 데이트, 어두운 밤 길을 둘이 걷는동안 그의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내게 말 했다. “난 너를 사랑해” 가까이에서 하는 말이 아주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던 그날. “나도 널 정말 사랑해”라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내 뱉지 못하고 꿀꺽 삼키곤 했다. 나는 그 말을 다 내뱉을 만한 용기가 없었다.
“너 한테 다 말해줄께” 그가 자기의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내게 들려줄 말들을 폭포수 같이 쏟아내던 밤. 내 생애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이 처럼 처음 사랑은 어려운 일이아니었다. 그냥 말 하면 되는 것이었다.
가끔씩 패이스 북을 열면 그의 얼굴이 불쑥 나타난다. 이상한 할배가 나를 처다본다. 나는 할배를 보면서 ‘내가 어찌 이런 늙은 할배를 사랑했을까?’ 생각하며 씩 웃어본다.
뒷 마당 소나무에 걸린 작아진 달을 쳐다본다. 오십 삼년 전 그날도 이 처럼 작은 쪽 달 이었다. 할배와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서 잠 자리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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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6도 / 맑음 / 치과 다녀옴 – 이래저래 병원가는 일이 잦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