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이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1월 11일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 마린스키 자선 병원 의사인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와 어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사이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나 15살 때까지 생가에서 지냈다. 아버지 쪽이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의사의 신분은 중인 계급 정도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으며 매우 엄격하고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이 있는데 토스토옙스키는 고슴도치형으로서 단일한 원칙을 고수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붙여진 별명들은 *잔인한 천재 *인간 영혼의 선견자 * 러시아 문학사상 가장 종교적인 작가 등이다.

그의 성격은 매우 관대했으며 경제관념이 없어서 허구한날 돈 걱정을 하고 살아야만 했다. 낭비벽과 도박까지 있어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다 써고 마는 버릇이 있었다.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남겨주고 죽었는데 자신에게 해마다 돌아올 유산을 변호사를 설득하여 일시불로 다 받아서 펑펑 다 써 버리기도 했다.

그에게 맞닥뜨린 첫 번째 시련 : 젊은시절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동참하여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 를 중심으로 작가 등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공상적 사회주의 를 신봉하는 급진적 정치 모임에 참가하였다. 당시 차르 니콜라이 1세는 첩자를 보내 정치 모임들을 감시하였는데, 도스토옙스키는 모임에서 절대 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온문서로 간주되었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 원인이 되어 1849년 4월 23일 5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체포된 지식인들을 사형에 처할 생각은 없었으나, 당시 확산되고 있던 급진주의 정치 모임들에 대해 경고하고자 직전에 특별 사면할 계획으로 사형을 선고하였다가 풀려나게 됐다. 사형은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옵스크 감옥에 갖힌다. 이곳에서 그는 죄수들의 삶을 면밀히 조사하며 작품세계의 모티브로 잡게된다.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된 지병인 간질 과 취미로 즐기던 도박 등이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간질과 도박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박은 그의 인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여 마감에 쫓기는 나날을 보냈다. 다행하게도 그가 유명헸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선지불하면서 그에게 작품을 부탁했고 그는 먹고 살기위해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두번째 극적인 장면 : 그는 3천 루블의 빚이 있었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만나 자기네가 3천 루블을 선불로 줄테니 11월1일까지 소설 한 편을 완성해 달라고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게 왠 떡이냐며 단번에 사인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는 소설 쓰는것을 까마득히 잊고있다가 10월이 되면서 도스토옙스키는 그때야 자기가 선불을 받고 소설을 써야하는 기억을 더듬어 냈는데 그가 사인한 계약서에는 ‘만약 날짜를 지키지 못 할 경우에는 당연 3천 루블을 되돌로 줄 뿐더러 앞으로 그가 만들어 내는 모든 작품들의 인세도 자기네가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매우 당황했고 거의 포기 상태였다.

그에게 돈을 빌려주던 친구들이 궁리끝에 속기사를 불러와서 구술로 속기사에게 불러주면서 10월29일에 ‘도박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속기사는 포기하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 어서어서 불러주세요.”하면서 용기를 주어서 마감안에 소설을 완성하게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박꾼’이다. 그 속기사였던 여인이 두번째 부인이된 ‘안나 스니트키나’다.

그는 ‘안나 스니트키나’를 만나 15년간 그의 가장 행복한 결혼생활을 마지막으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 안나 스니트키나는 그의 도박병을 고쳐준 사람인데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장으로 가고싶어 안달하면 바가지를 긁지 않고 자기 지참금까지 대 주면서 도박장으로 그를 내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그는 스스로 도박을 끊고 작품에 전념하여 대표작으로인 《죄와 벌》(1867년), 《카라마조프의 형제》(1879년 ~ 80년)  《지하실의 수기》(1864년)등을 무수한 대작을 내 놓을 수 있었다.

안나 스니트키나는 20세 연하로서 도스토옙스키로부터 경제권을 받아내어 철저하게 관리함으로 그를 말년에 편안하게 잘 살도록 도와주었으며 그의 사후에도 그의 저서와 모든것을 다 정리해 준 아름답고 똑똑한 여인이었다.

그가 죽는날 그이 가족에게 성경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성경을 손에들고 그 날의 점을 쳐왔는데 아무 페이나 펴서 자기 손가락을 누르고 그 손가락이 닿는대로 그 구절을 마음에 담고 살았단다. 그날 그의 손가락에 찍힌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3장 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이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독서, 과묵한 삶, 샴페인 사먹기, 연극구경가기, 새깃털 모자 사기 / 자유에대한 관찰 / 성경 읽기 /

**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23세 발표했는데 출판사에서 그 소설을 울면서 읽었다며 곧 바로 달려와서 도스토옙스키를 만났다고 하는데 그 책이 바로 베스트 셀러가 됨.

그의 작품은 가난이나 빈곤의 심리학 / 타인의 눈초리 / 상대적 빈곤 /

** 돈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 꿔주고 / 훔치고 / 받고 / 떼이고 / 사랑하고 / 자살하고 / 이런 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그의 모든 소설이 그의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리얼하고 박진감이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