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5세가 총애했던 마담 퐁파두르 :

루이 15세의 애첩 중 한 명. 1744년 루이 15세의 눈에 들어 의 정부가 된다. 죽을 때까지 20년동안 루이 15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치, 예술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신성로마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러시아 제국의 옐리자베타 여제와 함께 프로이센 왕국에 대항하는 3각 동맹을 구축하는 데 일정한 역할이 있었다. 이것을 동맹의 역전이라고 해서 프랑스 외교사에서 꽤 중요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녀의 초상화에는 거의 책을 들고 있는데 그녀가 많은 독서를 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루이 15세의 성병이 옮겨져 죽었다는 설이있다. (42세에 사망)

양귀비 :

그녀의 성은 양(楊)이고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귀비는 황비(후궁)로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벽화 등 그림에서 유추해보면, 당시 미인의 표준으로 실제로는 풍만한 여성이었다. 또한, 재주가 뛰어나 비파를 비롯한 음악과 무용에 큰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 현종 이융기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그것이 과도하여 끝끝내 안녹산과 사사명이라는 두 호족 세력 무장 대표가 공동 주도하여 반란을 획책한 이른바 안사의 난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도 부른다. 서시왕소군우희와 아울러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 일컬어진다. (37세에 사망)

그레이스 켈리 :

그레이스 패트리샤 켈리(영어: Grace Patricia Kelly, 1929년 11월 12일 ~ 1982년 9월 14일)는 미국의 배우이며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의 대공비(大公妃)다.

1950년, 20세의 나이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후 그녀는 뉴욕에서 연극과 생방송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53년 10월, 모감보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그녀는 1954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갈채를 비롯해 5개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며,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26살에 은퇴하고 모나코로 가게 된 그녀는 모나코 공녀 카롤린과 알베르 대공, 그리고 스테파니 공주를 낳았다. 또한 그녀는 미국 시민권과 모나코 시민권을 둘 다 유지했다.

1982년 9월 13일,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런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날 사망했다. 차에 같이 타고 있던 그녀의 딸 스테파니 공주는 살아남았다.

1999년 6월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미국영화의 전설적인 50명의 배우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53세에 사망)

제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

재클린 리 부비에(Jacqueline Lee Bouvier, 1929년7월 28일 ~ 1994년5월 19일)는 미국의 저술가이자 출판업자이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존 F. 케네디를 첫 번째 남편으로 두었기 때문에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또는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자신의 프로젝트의 최고점으로서 재클린 여사는 1962년 2월 14일 국내 텔레비전 방송에 복구된 백악관의 순회 공연을 주었다. 5천 6백만명으로 기록된 시청자들이 그녀를 특별히 보고, 재클린 여사는 자신의 상연으로 명예 에미 상을 수상하였다.

영부인으로서 그녀는 또한 예술의 위대한 장려자이기도 하였다. 전형적으로 국빈 초대 만찬회에 차지된 공무원, 외교관과 정치인들의 추가로 재클린 여사는 국가의 최고 정치인들과 교제하는 데 국가의 지도적인 작가, 화가, 음악가와 과학자들을 초대하기도 하였다.

추가적으로 재클린 여사는 홀로 혹은 남편과 함께 번번히 세계를 순방하였고, 외국의 문화와 언어들에 그녀의 깊은 상식은 미국에 친선을 축적하는 도움을 주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파리로 재클린 케네디를 동행한 남자”로서 자신을 소개한 프랑스에서 숭배적으로 받아졌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지 5년 후, 1968년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4월 4일)와 재클린 여사의 제부 로버트 케네디(6월 6일)가 암살된 해였다. 그들의 사망에 애도한 재클린은 그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였고, 10월 28일 그리스의 선박 부호 애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하였다. 하지만 7년 후, 오나시스 마저 사망하여 그녀는 또다시 미망인이 되었다.

두번째 남편의 사망에 이어 재클린은 다시 언론계로 복귀하였으며, 뉴욕의 바이킹 프레스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그러고나서 더블데이로 옮겨 시니어 편집자를 지냈다. (암으로 64세에 사망)


이렇게 화려한 외모와 지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하하는 이 여인들, 왕의 여자로 살다간들의 일생들을 잠시 반추해 보았다.

나는 이 여인들의 일생을 보면서 ‘내 얼굴이 요만큼 생긴것과 적당히 살고있는것도 큰 복이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들은 모두 다 나 보다 일찍 죽었고 더우기 양귀비는 ‘안사의 난’에 가입했다는 죄목으로 목매달아 자살을 강요 당하지 않았는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8도 / 매우 온화했음 / 마당일을 하기위해 코트 입지 않고 나갈 수 있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