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반에 일어나 7시에 아들집을 나섰다. 아들집에서 패리 터미널까지는 약 10분거리다. 생일선물로 건네준 옷과 정원 일 하면서 신으라고 사 준 긴 장화가 무척 마음에 든다. 선물을 다 가져올 수 없어서 일부는 아들집에 남겨놓고 다음에 가져 오기로 했다.

날씨는 계속 구름이 잔뜩끼었고 음산하고 찌뿌리고 있다. 바닷물이 가깝게 보이는 낮은 배 안에서 밖을보니 드문드문 물건을 실은 배들이 지나간다. 날이새면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라 분주하고 또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내 먹을 것을 갖다주랴.

유유히 물건들을 싣고 지나가는 배들을 보면서 이것들을 그리려면 어떻게 할까? 그림이 될 만한 소재가 될까? 이런저런 공상을 해 보기도 한다.

간 밤에 잠도 충분히 잤건만 배 안에 앉자마자 잠이 스르르 든다. 한 시간정도 잔 것같다. 시애틀과 빅토리아까지는 배로 2시간 45분이 소요된다. 나는 가져간 책 보는것도 절제하고 커피 한잔을 사 놓고 멍~ 하게 앉아있는다. 이제는 노는게 노동인가보다. 교회가서도 내 눈은 스르르 감기고 운전하고 집에 오는데도 침대생각이 간절하다.

마당에는 일 주일사이에 꽃들이 많이 피었다. 목 잘려나간 튜립 사이로 제법 많은 튜립들이 피어나서 한 곳에는 근사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 “오, 고마운 것들!”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일찍 뿌려놓았던 야채 씨앗들도 손톱만큼씩 싹들을 올리고 있다.

5월 둘째 주일부터 한국에서 올케와 여자 조카가 놀러오는데 이것들이 어서 쑥쑥 자라나 주었으면 좋겠다.

아들 며느리 집이지만 내 집이 아닌곳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불편하다. 며느리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함께 먹고 나는 “다음일은 난 몰라요.” 라며 무조건 내 방으로 내려온다. 이것은 내가 며느리를 도와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자들은 자기 부엌에서 누군가가 서성이면 불안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 혹 내 마음에 안 드는 것 보아도 나는 안 보았음

** “얘들아, 여긴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란” 말을 하고 싶어요. 난 입 없음.

** 지들 도와주기위해 하다만 바느질도 며느리 오면 다 접고 마감함. (옛날에 나도 직장생활하고 집에 돌아오면 두 다리 걸치고 쉬고 싶은데 누가 있으면 그걸 못하기 때문)

** 손녀, 며느리 그리고 내가 함께 나갈경우 며느리 지갑 못 열게 얼른 앞서 내가 내 준다. (돈 벌어서 안쓰면 뭐하나? 쓰기위해 버는 돈 이왕이면 며느리한테 인심쓰는 것이 최고지)

집에와서 저녁으로 두부, 대파, 매운고추, 기름 낸 마늘, 양파 등을 넣고 뚝베기에 끓인 된장과 찹쌀 밥 한 공기에 긴 포기김치 쭉쭉 찢어서 한 입물고 나니 입 안 가득 행복이 넘친다. 난 정말 꼬리안이야. 난 김치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꼬리안이 좋아.

다시 내 책상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쓰게되니 대단히 기쁘다.

‘Home Swee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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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현재 7도 – 내일부터는 11도로 올라간다고 예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