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26년생인 의사 한원주님께서 이달 10월5일에 별세했다. 9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기 2 주 전까지 친히 진료를 해오던 귀한 분이다. 독립운동가이며 의사였던 아버지가 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켜서 의사까지 만들었다. 한원주님은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까지 갔던 분이다.

그러나 행복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녀의 나이 53살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고 인생의 큰 변화를 겪게된다. 돈은 별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닫고 운영하던 병원을 접고 무료진료를 결심해서 돌아가실때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대한민국의 335번째로 의사 면허증을 받았다. 참으로 멋지지 않은ㄴ가.

일주일중 닷새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이틀은 집에간다. 집과 병원은 대중교통 2시간 30분 걸리는데 네 번의 버스와 전철의 갈아타야만 하지만 운동하는 마음으로 다닌다고 생전 말했다. 그녀의 모습에서 어설픈 노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떨리는 왼 손으로(오른손은 사용하기가 힘들다.) 눈썹을 그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3년전 시상식에 참여하여 “나는 늙었다고 생각 안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아흔 나이라고 자꾸 부르네요.”라며 유머까지 날려서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녀는 환자들의 육체의 아픔을 고쳐주기도 했지만 마음의 병까지 고쳐주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렸던 훌륭한 의사였다.
진료가 끝나면 컴퓨터에 입력까지… 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오른손이 말을 잘 안들어서 왼손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를 사용한다는데 매일의 삶이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환자들을 매일 돌보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위로한다. 어느 환자가 “빨리죽고 싶다”고 말하니 “올때도 내 마음이 아니었고 갈때도 내 마음대로 못가지요. 하나님께서 불러야 갑니다.”며 위로한다. 환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사탕도 까서 입에 넣어주면서 훌륭한 의사로서의 사명을 끝까지 다 하고 갔다.

“내가 감사한 것은 딴게 아니예요. 예수님을 진짜 구주로 영접한 거지요. 그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180도 달라졌어요. 나를 위해 사는 것보다 나 보다 더 힘든이들을 위해 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94세를 잘 살고 떠나면서 그녀가 남긴말은 이 말이다.

“가을이다. 힘내, 사랑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17도 / 맑음 / UVic (빅토리아 대학교 한국어 봉사자 벌써 6주를 넘겼다. 절반을 지난 셈이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다. 나도 이 일에 많이 익숙해 져서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