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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분의 어릴때 얘기다.
어느 초여름,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부모님이 급히 여장을 꾸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고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가면서 딸에게 사발 시계 태엽을 매일 감아서 시계가 죽지않게 하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이었다. 평소 아버지가 하던 대로 시계의 태엽을 감았지만 어린 소녀의 손아귀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시계가 멈추면 큰일이다 싶어 걱정 하던 중 퍼뜩 떠오른 사람이 목사님이었다. 소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발시계를 들고 골목길을 내달았다.
교회 울타리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던 아침이었다.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던 목사님은 흰 타올을 목에 감은 채 시계를 받아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태엽을 감아주었다. 그날 오후 이웃 언니가 차려준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시계 생각이 났다. 그녀가 점심을 먹듯 시계에게도 점심 태엽을 감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꼬마 소녀는 아침에 처럼 또 시계를 들고 목사님을 찾아갔다. 우물가에는 물 긷는 사람도 없었고 초여름 햇볕만 가득했다. 이상하게 목사님 방문은 닫혀 있었다. 어린 꼬마는 그래도 목사님이 낮잠을 자는가보다 싶어 밖에서 목사님이 잠에서 깨기를 한 참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순간 방 안에서 두런두런 목사님 목 소리가 들였다. ‘아, 잠이 깼나보다’싶어 “목사님”하고 소리치며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때는 교양이란것을 찾기가 어려웠고 더우기 어린 소녀는 그랬을 것이다.) 목사님 눈과 소년의 눈이 짧게 마주쳤다. 목사님은 낮잠을 주무신 게 아니었다. 책상 옆에 엉거주춤 선 채로 무언가를 먹고 있던 중이었다. 목사님 옆에는 배가 동산만큼 부른 부인이 수박을 한 조각을 들고 어쩔줄 모르는 얼굴로 서 있었다. 목사님이 소녀에게 “무슨일로 또 왔니?”라고 물으니 소녀는 “목사님, 시계 태엽 좀 감아주세요.” 라 말했다. 목사님은 그제야 상황을 짐작했는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얘야 시계 태엽은 하루에 한 번씩만 감아 주는거란다.”
며칠 뒤 엄마가 돌아오자 소녀가 목사님 내외가 문을 닫고 수박을 먹고 있더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엄마는 얼굴을 이죽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고 교인들이 낸 연보돈으로 지들은 수박이나 사먹는던 가베.”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다 보니 교회 마당에 마을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목사님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 우리 마을을 떠나는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아기를 낳고도 먹질 못해 얼굴이 부어 있는 목사님 부인이 안쓰럽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할머니도 있었다. 사람들은 몇 됫박의 곡식과 달걀을 들고 와서는 트럭 앞자리에 실어주었다. – 이규복님의 <종지기의 수박>중에서 일부 발췌
** 그때는 그랬었다. 우리집에도 매일 아침마다 엄마가 밥 하기 전에 성미쌀을 떼어 쌀 주머니에 넣어 부엌 기둥에 걸어두었다가 목사님 양식으로 가져다 드렸다. “목사님이 어떻게 사시는지…” 그 곳을 떠난 한 참 후에도 종종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 김 목사 가족 고생 참 많았다.”
만삭된 아내에게 수박 한 조각 먹이는것도 성도들 눈치를 보면서 오뉴월에 방문을 꼭 닫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목사는 가난했고 또 가난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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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6도 / 맑음 / 집 안에서 뭔가 바쁘게 돌아다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