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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선생님 어제 어딜 가는데 길가에 고사리가 주욱 서 있었어요. 아무도 발 길이 닿지 않았는지 제가 첫 발걸음을 했나봐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조금 땄는데 선생님 생각이나서 가져왔어요.”
“어머나, 이런… 삶아서까지 가져왔네요. 고마워요.”
젊은이는 이렇게 삶은 고사리를 가져와 내게 건내준다. 허리 다친 이후 고사리 밭 소풍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 빈 마음을 채워주는 이가 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은가.
나는 해마다 고사리 철이오면 놀이삼아 한 두 번 우리 밭에 다녀오곤했다. 내가 우리 밭이라고 명명하는것은 그곳은 멀기도하지만 자동차도 드물게 지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곳이다. 더우기 속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많은 고사리 밭이지만 겉에서보면 그냥 그런 곳이라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이다. 나는 그동안 그곳을 ‘우리 고사리 밭’이라고 불러왔다.
한 번은 고사리를 따서 양쪽 손에 가득히 들고 나오는데 길이 안 나온다. 내가 자동차를 파킹한 곳으로 가려면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리 가도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길이 아니다 싶어서 다시 방향을 돌려서 가니 그곳도 아니다 이렇게 약 30분가량을 헤매는데 진땀이나고 양 손에 들은 고사리 보따리가 무거워 미칠 지경이다. 어쩌나. 그곳에서는 전화기도 안 터지니 함께온 동료와도 연락을 할 수 없다. 나중에는 고사리 보따리가 웬쑤처럼 여겨져서 내동댕이 칠 판이었다. 헐 헐 헐 나중에 보니 사방이 너무 똑같이 나무가 빽빽하고 썩은 그루터기들도 모두 비슷비슷해서 그렇게 헤매었던 것 같다. 그 이후 고사리 따러 갈때면 나침판을 가지고 들어가서 더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 이렇게 따온 고사리는 정리하는 것이 또한 큰 역사다. 우선 머리와 억새게 딴 것도 다 다듬어서 뜨거운 물에 삶아 건져 내는데 너무 많이 따올때는 욕실을 깨끗이 씻어서 거기서 물을 빼내야했다. 이렇게 삶아 물기를 뺀 고사리는 다음 날 날씨가 좋지 않으면 큰 일이다. 고사리를 말려야 하는 날 계속 비가 오면 뭉쳐서 냉동을 시켜서 날씨 좋을때 밖에서 말린다. 이것도 처음에는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집 안 가득 고사리 말리느라 독한 고사리 냄새 풍기고 난리를 했는데 해마다 요령이 생겨서 냉동으로 간단히 해결을 볼 수 있게됐다.
** 그렇다면 힘들게 따와서 말려 저장해 놓은 고사리를 매일 먹는냐? 그것도 아니고 일년에 몇 번 먹는데 왜들 우리 한국사람은 고사리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우선 나 부터도 그 고사리 목을 ‘똑~’하고 딸때는 어마 무시한 희열을 느낀다. 고사리를 따다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뒤로 자빠지기도 부지기수지만 그런것 아랑곳 없다. 가져간 고사리 보따리가 살이쪄가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마치 그것이 돈 보따리인양 두드리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이제는 고사리 따러가는 것 못 할 것같다. 앞으로 예전처럼 허리가 쭈욱 펴지고 팔팔 한다 해도 다시 다치면 안되기 때문에 아쉽지만 바이바이를 한다.
고사리여 안녀엉, 그동안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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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1도 / 흐리고 가랑비 / 산책 1회 / 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