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의 정서는 싫은 것을 단번에 싫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쉽지않다. 그러다보니 싫은것을 아닌척 하고 살면서 불이익을 당하는 수가 너무 많다. 나도 지난 세월 시집가기 전이나 시집가서나 모두 ‘싫다’는 소리를 아꼈기 때문에 고생하며 바보처럼 살아온것 같다.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에서 어느 여자 정신과의사의 간증을 듣게됐는데 아들 선호가정에서 맏딸로 태어났고 둘째가 남동생이었단다. 엄마는 언제나 남동생의 숨소리만 들어도 행복했고 첫 딸인 자기에게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단다.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아보기위해 언제나 엄마를 돕고 공부도 열심히 한 착한 딸로 살아온 얘기다.

그녀는 지금 남의 정신적 치료를 해 주고있는 의사지만 자신도 지난날의 ‘싫다’ 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언제나 참고 살아온것이 밑 바닥에 깊이 깔려있어 얘기를 하면서도 내 내 눈물을 줄줄 흘린다. 허 허 허 글쿠나. 아무리 그녀가 현재는 어엿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다 도려낼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 왜 나만 집안 일 시켜?”

“엄마, 나 친구하고 놀러가고 싶어.”

“엄마, 엄마의 언어가 너무 폭력적이야. 좀 부드럽게 말해 줄수는 없어요?” (세월이 지나고보니 이 부분은 엄마를 이해하게됐다. 혼자 살면서 어디다 화 풀이 할 수 없을때 자연스럽게 자식들이 그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여보, 당신 집 칠 형제인데 왜 둘째인 내가 시부모 모시고 살아야돼? 그렇다고 집안 유산도 하나도 없는데.”

“여보, 모시고 사는것은 그렇다 치더래도 형제들이 모두 부모들 쓸 용돈과 생활비등은 각출해서 우리한테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친정에서나 결혼 후에나 나는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내가 어찌 멍들지 않으랴. 심장에 콩팥에 간에 머리에 가슴에 그리고 팔 다리에 온통 박혀있는 것들이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그 상처들에 군살이 박혀서 더 이상은 떠들고 일어나지 않으니 살아가는가보다.

사람은 순하면 안되고 깍쟁이 소리를 들어야 편하게 산다. 만약 다음 세상에 태어 날 기회가 있다면(사실 태어나면 안된다.) ‘깍쟁이’로 태어날 것이다. ‘엘리샤 = 깍쟁이 으 흐 흐 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16도 / 맑음 / 사정이 있어서 산책을 못나가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