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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타이포 그래퍼 ‘얀 치홀트’에 대해 공부해보았다.
광고, 영상, 미술, 건축등 문환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퇴행적인 활자체 및 배열에 환멸을 느끼고 이를 깨끗이 청산하여 영혼과 삶, 그리고 당대의 시각적 감각을 찾아 내려고 노력했다.
<얀 치홀트는 1902년 4월 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타이포그래피의 대가를 길러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라이프치히는 당시 출판업, 인쇄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고, 아버지는 사인 제작자 sign painter, 지금의 레터링 아티스트(Leterring artist)였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얀 치홀트는 자연스럽게 레터링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신타이포그래피’라는 용어는, 얀 치홀트 이전까지 당대 혁신적인 여러 디자인들 사이에 공유된 새로운 예술의 비전을 담은 일반적인 서술어에 불과했다. 이 말을 심화시켜 이론적 체계를 세우고, 실천적으로 전개해 특별한 용어로 만든 인물이 바로 선구적 디자이너 얀 치홀트이다. 그는 순수함, 명료성, 단순함을 가치로 하는 신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을 제시하여 신 타이포그래피를 정립하였다. 하지만 스위스 이민 후 정작 자신은 고전 타이포그래피로 회귀하게 된다. 얀 치홀트는 디자인의 역사상 모더니즘을 발아시키고 곧바로 해체하기 위해 후기 모더니즘으로 가버린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신 타이포그래피의 금욕적 단순성은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지경에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여,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로 다시 노선을 바꿨다. 자신이 구축한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위기 징후를 미리 직감하고 폐기해버린 것이다.
얀 치홀트는 전향 이후 고전적 타이포그래피의 부활을 통해 책 디자인의 인본주의적 전통을 회복시켰다. 얀 치홀트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그의 실질적인 이해와 그 전통을 새로운 실험을 통해 종합해 보임으로써 모던 아트 운동이 그래픽 디자인과 어떤 관련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 발전에 대한 공헌으로 치홀트는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미국인쇄산업협회가 수여하는 최고상인 ‘컨티넨탈 유로피언(Continental European) 상’을 최초로 수상하였고, ‘미국그래픽아트협회(AIGA)’로부터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런던더블 크라운 클럽‘의 명예회원이자 프랑스 타이포그래피 협회 명예회원이었고, 독일예술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얀 치홀트는 1965년에 라이프치히 시로부터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구텐베르크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모던 타이포그래피에 지대한 영향력을 남기고 1974년 8월 11일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상 인터넷 발췌
**얀 치홀트는 지금 우리들이 보고있는 대부분의 디자인을 만든 사람이다. 요즈음 만든 책들의 거의 모든 디자인을 이 사람이 만들었다. 얀 치홀트가 나오기 전에는 글짜들이 쭉쭉 가운데로 몰려있었다. 왜냐면 그냥 인쇄하기가 편하니까. 그의 출현으로 화면내에 재미가 생겼다. 폰트의 무게와 화면의 재미 정보의 효율적인 매치등이었다. 기존의 디자인보다 다채로운것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천재적 아이디어와 끝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 그는 ‘Penguin books’에 처음 포맷을 잡았다. 그러나 비 대칭의 디자인을 하던그가 말년에는 대칭으로 돌아오게됐다.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한다. 결국 모든일은 중심을 잡고 다시 밸런스를 맞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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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21도 / 후후훗 너무 멋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으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