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시애틀 아들 집 앞에 예정된 아침 6시45분에 택시가 도착했다.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살결이 짙다. 나는 뒷 자리에 앉아서 가는데 요즈음 시대가 하수상하여 아무리 택시 운전사라해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대고 일부러 딸에게 전화 하는 척했다. 엄마 방금 택시 탔다. 69번 부두로 가는 중이다. “Hi Treresa, it’s mom, I just took a taxi. Going to pier 69. 만일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내 위치를 알려주는것이 우선이다.

아들 집에서 부두는 그리 멀지 않고 새벽이라서 차들도 한가하다. 조금 가고있는데 운전사에게 비디오 전화 한통이 들어온다. 남자가 반갑게 받아서 자기네 나라말로 솰라솰라 한다. 그의 아내와 딸 그 뒤로 작은 남자 아이까지 세명이 번갈아가며 남편과 아빠에게 인사한다. 여러말을 하고는 마지막에 영어로 “I love you”라고 말하니 이 남자도 “I love you too” 라고 말한다. 전화를 끊고나서 남자는 말없이 운전을 하는데 자꾸 손이 눈쪽으로 간다. 남자는 울고있는 것이다. 침묵을 지키던 내가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족이 떨어져 있나봐요.”

“네” 그가 말했다.

“가족들은 어디서 살고있나요?”

“에티오피아에요.”

“아이고, 너무 멀리있군요.”

그리고 나도 그도 아무말도 못하고 목적지 까지왔다. 요금이 20불이란다. 내가

“50불로 결제해 주세요”라고 말하니 “네에?”라며 그가 나를 쳐다본다.

“적지만 30불은 당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세요.”

그는 너무 놀라서 고맙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끊이지 않는다. 무슨 말을 안해도 나는 다 안다. 이 남자의 고통과 그 가족들의 힘듬이 얼마나 큰가를. 이 남자는 크리스마스 연휴는 다가오는데 가족을 보러 갈 수 없는 형편이다. 새벽에 아내와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흘리는 그 남자의 소리없이 눈물이 왜 내게도 강하게 다가오는지…

우리가족도 처음 1976년 처음 이민와서 매월 시댁에 100불씩 우리 엄마에게 50불씩 보내드렸다. 그게  당시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큰 돈이었지만 그것을 받는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젖줄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디 새벽에 운전한 기사님 성공해서 가족 다 미국으로 데려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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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는 동아프리카 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지만 끊이지 않는 내전과 자연재해 (가뭄, 홍수, 질명, 메뚜기떼 내습)등으로 인해 인도적 지원이 수천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유엔이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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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1도 / 구름과 안개 /집에 잘 돌아와 푹 쉬고 하숙샘 저녁도 잘 차려드리고 잔잔한 집안일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