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빅토리아에 이사 온 지 벌써 14년이 됐다. 나는 그 시점부터 현재 다니고 있는 ‘빅토리아 은혜장로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교회에 출석한 이듬해 1월, 예산 및 결산 심의를 위한 ‘공동의회’가 열렸다. 당시 교회는 지금보다 교인이 적었고, 나는 처음 온 신도라 회의 중에 듣기만 했다. 이런 회의에서는 성도들이 주로 목사의 사례비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예산안을 읽고 난 후, 내가 불편한 마음에 손을 들었다. “저 목사님 사례비가 줄어들었는데,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신입인 내가 용감하게 의견을 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자 한 성도가 반대하며 자신도 적은 월급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건 뭐지? ‘내가 월급을 적게 받으면 목사도 적어야 한다는 것인가?’
결국 목사의 사례비는 예산안대로 줄어들었고, 내 의견은 묵살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의 태도가 무척 야박하게 느껴졌다. 물론 대형 교회에서 과도한 사례비를 받는 목사들도 있지만, 작은 섬마을에서 여섯 가족이 받는 목사 사례비가 나 혼자의 월급보다 적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목사 월급을 깍는데 찬성한 그 성도의 직장은 현재 월급이 적지만 은퇴 후에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어 노후 걱정이 없는 든든한 직장이다. 목사가 자기보다 더 많이 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민자들 중에는 여러가지 마음 고생을 많이 하기 때문에 목사 월급이 많으면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에서 목사에게 과도한 월급을 주는 곳은 없다. 어느 교인과 이런 문제로 통화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성도에게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이민자들의 애환을 나한테 얘기합니까? 당신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집이나 콘도를 계약하고, 영어만 조금 할 줄 알면 탁아소 같은 직장들도 널려 있는 이 빅토리아에서 살고 있잖소? 내 앞에서 이민자 고생 운운하지 말아요. 나처럼 이민 초기부터 힘들었던 사람들의 눈물을 당신들이 알겠소? 나는 단 한 번도 내 월급이 적어서 목사님이 더 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소. 목사님들은 새벽기도, 금요기도, 주중 심방 등 많은 수고를 하고, 그 사례비는 최저임금 수준이더군요.”
예수님이 가난하게 살다 갔다고 해서 목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건강한 생각이 아니다. 예수님과 인간인 목사를 예수님과 대입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왜곡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