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월요일(23일) 저녁 7시에 밴쿠버 소망교회 초대 목사로서 은퇴까지 담임하셨던 남상국 목사의 부인인 남정옥 사모의 장례식이 있었다. 나는 웬만하면 참석 했어야 했지만, 집에 온 손님들의 아침 식사 준비가 있었고, 저녁에 운전하는 것을 피하고 있어 부득히 불참했다. 대신, 남목사님께서 조금 여유를 찾으실 때쯤 일부러 찾아 뵈어 함께 식사하며 내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남목사님은 전도사 시절 소망교회에 부임 하셨는데, 당시 우리 가정을 포함한 4가정이 소망교회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후 교회는 기하 급수적으로 부흥하여, 당시 밴쿠버에서 3대 큰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할 정도로 교인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 30대 중반이었고, 젊은 만큼 교회 일도 두려움 없이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사모님은 외모, 인격, 실력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출중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병원에 다니며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게되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장례식에 다녀온 몇몇 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파킹도 아주 멀리했어야 했고, 따라서 장례식장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모두들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겨우 멀리 계신 남목사님께 눈 인사만 드리고 돌아갔다고들 한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장례식장에 평생에 이 처럼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처음본다. 아마도 밴쿠버 사람들이 다 온것 같다.”면서 이런 현상은 남목사님의 살아오신 삶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상국 목사는 참으로 좋은 목사, 진정한 목사, 세상 물질에 욕심 없는 목사이며 초심을 잃지않고 끝까지 달려온 예수님의 참 제자 답다고들 말한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장례식장에서는 헤어지고 몇 년, 몇십 년 만에 만난 옛 교우들을 만나게되어 너무나 반가웠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그때 팽팽했던 얼굴들이 모두다 늙어서 이제는 ‘맛이 갔어’라며 그 실망감을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을 만난 건 반가웠지만, 조사가 너무 길었고, 기도와 설교 역시 한국어와 영어 번역까지 하느라 2시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한 분은 밤이 깊어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집에 돌아와 세수하고 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며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순서를 맏은 사람들은 조문객을 생각해서 짧고 간단하게 말해야 하는것은 기본 상식인데 마이크를 잡으면 모두들 그런 생각이 없어지는 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 덕분에 옛 교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고들 말한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고인이 이어주는 장례식장.’

남정옥 사모 장례식장의 풍경을 떠올리니 이 글귀가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모님 이 세상 소풍놀이가 너무 힘드셨지요?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예수님 품 안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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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종일 비가오다. / 15도 / 저녁늦게 비가 그쳤지만 구름이 많이 끼었다. / 수영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