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불꽃처럼 물들어가고 있다. 우리동네 코너에 자리한 집은 화려한 화단으로 유명한데, 그 집의 정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늘 생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어제 보니, 어느새 꽃대들이 모두 잘려나가고, 마치 한여름의 그 화려함은 꿈이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바람에 스쳐 지나가는 낙엽들만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 집 정원의 꽃들도 하나둘씩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 남은 몇몇은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듯 자신만의 자태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마지막 춤을 추듯, 주인에게 하직의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야, 새로운 시작일 뿐이야’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그들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그들이 머물렀던 빈 자리에는 나만 아는 더 깊은 이야기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비와 벌들이 날아다니며 자치했던 날들, 뜨거운 여름날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아 몸을 낮추던 꽃들의 모습들. 그 모든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떠나간 꽃들이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어. 흙 속에 숨겨진 뿌리와 씨앗들은 내일을 기다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봄을 준비하고 있단다.” 꽃들이 사라진다 해도, 그 뿌리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따뜻한 추억과 함께 다시 피어날 날을 약속하고 있다. 지금은 잠시 휴식을 취할 뿐이다.
나는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그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곱씹으며, 내년 봄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 이렇게 가을은 자연의 안녕을 고하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계절로 깊어간다.
화려한 가을단풍 잎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가을이다. 붉고 노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 없이 나를 초대하고 있다. 가고 오는것이 바로 계절의 순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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