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 의자는 다 내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참고로 우리집에는 침대 말고는 책상과 의자들이 거의가 다 2nd hand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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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펑펑 내렸고, 아침에도 여전히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수영장에 갈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수영장이 문을 열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웹사이트를 열어보니, 다행히 수영장 스케줄은 정상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시설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도 망설여졌다. 몇 번이나 갈까 말까 고민했다. 내가 수영장에 갈 때면 하숙 선생님은 그곳의 산책로를 돌고 오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합쳐져야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운동을 못 했고, 날도 추운데, 수영장에 가서 몸을 풀고 사우나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도 나를 채근했다. “빨리 가자! 오늘 운동 안 하면 3일 동안 쉬는 거잖아. 내 몸이 근질근질해!” 하는 듯했다. 나 역시 몸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며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선생님, 일단 길을 나서봐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움직였지만, 출발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차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앞 유리를 닦고 나면 뒷유리와 옆 창문에 다시 눈이 내려앉았다. 겨우겨우 눈을 치우고 차에 올랐다. 동네를 둘러보니, 도로에는 자동차 바퀴 자국조차 없었다. 하숙 선생님은 조심스레 핸들을 잡고, “살살, 조심조심”을 외치며 천천히 운전했다. 우리 집은 약간 높은 곳에 있어서 내려갈 때 더욱 신경을 써야 했는데, 다행히 오가는 차가 없어 무사히 통과했다.
큰길에 나가 보니, 모든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무사히 수영장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적었다. 아니 숫자로 세기가 민망할 정도로 몇 명 이었다. 강사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와준 것이 기특했는지, “오늘은 특별 보너스를 드릴게요!” 하며 물속 요가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새로운 동작들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내 옆에서 운동하던 한 젊은 여성이 말을 걸었다. “저는 항상 엄마랑 같이 오는데, 오늘은 저 혼자 왔어요. 엄마는 눈 때문에 못 나오셨거든요.” 다행히 그녀의 집은 수영장과 가까워서 차로 2~3분 거리라 쉽게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운동이 끝난 후, 할매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나는 홀로 hot tub에 몸을 담갔다. 하얗게 김이 피어오르는 물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평소 시끌벅적하던 할매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내가 이곳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집 안에 수영장과 사우나를 들여놓기도 한다던데,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게 이 넓은 공간을 통째로 선물하신 것만 같았다. 청소도, 관리비도 걱정 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치스러운 순간. 이런 날을 복받은 날이라 하지 않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렇게 눈이 계속 내리면, 내일은 나가지 않을 작정이다. 이틀 동안 쌓인 눈이 얼어붙으면 길은 더욱 미끄러울 테니 말이다. 오는 사람도 없고, 나갈 일도 없으니 이 핑계로 푹 쉬기로 했다. 오늘 충분히 움직였으니 내일은 마음 편히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을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출석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고작 여덟 명뿐이었다. 보통 50~60명이 모이는 넓은 수영장에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We made it!” 하고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왠지 뿌듯하고 우스웠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시원하게 휘저으며, 비록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지만 오늘 하루는 잘 보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날씨 : 1도 / 수영장 다녀오다. 의자에 그림 그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