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계란을 훔친 할머니 사건과 라과디아 판사의 따뜻한 정의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뉴욕은 극심한 불황에 빠져 많은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한 할머니가 배고픈 손자를 위해 가게에서 계란을 훔치고 도둑질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당시 판사였던 피오렐로 라과디아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당신이 계란을 훔쳤나요?”
“네, 배고픈 손자를 위해서 그랬습니다.” 라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라과디아는 할머니의 사정을 깊이 생각한 후, “법은 법이므로 1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판결하자, 할머니는 절망했다. 원래도 돈이 없어서 도둑질을 한 것인데 벌금 10달러를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라과디아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할머니에게 벌금을 대신 내라고 요청했다. 이어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도시에서 한 할머니가 손자의 배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해야만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나요? 각자 50센트씩 내주세요.”고 외쳤다. 이날 즉석에서 모인 금액은 총 47달러에 달했고, 그 돈을 할머니에게 건네며 “이제 가서 손자와 함께 따뜻한 식사를 하라.”고 말했다.
2. 뉴욕의 변화를 이끈 라과디아의 정치와 행정 업적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뉴욕시장을 세 번 하는 동안 뉴욕시를 장악한 부패 정치 조직인 탐매니 홀(Tammany Hall)과 맞서 싸워 경찰, 시 행정, 법원 등 각 기관의 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행정을 도입했다.
- 대공황 극복 노력: 루스벨트 대통령과 협력하여 대규모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급식, 공공 병원, 공공 주택 건설 및 보건·복지 정책을 강화하여 시민의 생활 안정에 기여했다.
- 도시 인프라 현대화: 뉴욕의 도로망 확장과 공항 건설 등 도시 기반 시설을 발전시켜 오늘날 뉴욕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을 마련했다.
3. 시민과의 소통 및 유산
라과디아는 직접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책을 설명하고 시민과 소통하는 등 친근하고 소탈한 리더십을 보였다. 신문 파업 중 어린이들에게 만화책을 읽어주는 등 시민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여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와 리더십은 이탈리아어로 “작은 꽃”이라는 뜻의 ‘Fiorello’에서 유래된 그의 별명 “The Little Flower”로도 잘 표현된다.
라과디아의 업적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져, 그의 이름을 딴 라과디아 공항이 뉴욕을 대표하는 공항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이처럼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법정에서부터 도시 행정과 시민 소통에 이르기까지 뉴욕 시민들에게 따뜻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그 시대와 오늘날에도 기억되는 위대한 지도자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