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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는 ‘이 사람이라면 내가 가장 급할 때 돈도 빌려 달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사람이 있다. 그가 오늘 저녁에 내 집을 방문했다. 사실 우리가 알게 된 지는 불과 6~7년 남짓이지만, 그동안의 교류를 통해 그의 따뜻한 마음과 정의로운 성품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긴 세월을 함께한 친구가 아니어도,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진실했다면 깊은 신뢰가 싹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지만, 막상 돈을 빌려달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거절당할까 봐 조심스럽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이 더 선뜻 빌려줄 법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여윳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돈 문제는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밴쿠버에 살 때, 내가 아는 한 여 집사가 있었다. 그녀는 나쁜 남편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났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은행 대출 보증을 서 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경에도 보증을 서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녀의 인격과 성실함을 믿었기에 내 통장에 돈이 없어도 그녀를 위해 보증인이 되어 주었다.

또 한 번은 미국에서였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한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영주권이 없어 정식으로 일할 수 없는 처지였고, 결국 내 사회보장번호(SIN)로 월급을 받아주게 되었다. 단순한 방세를 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이 두 경우 모두 가족들이 있었지만, 정작 가까운 혈육들은 금전 문제로 인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가족이라 해도 돈 문제가 얽히면 차갑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시험하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다행히도 나는 이 두 경우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내게 평생 고마움을 표현하며 연락을 해 오곤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나의 작은 도움이 삶을 이어가는 커다란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받기 위해 도움을 준 것이 아니었다. 힘들 때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우연히 스쳐 간 인연이라도 상대가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먼저 손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 가는 요즘, 따뜻한 마음 하나가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지키며, 결국 내 삶에도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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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흐리다가 해나다 / 7도 / 걷기와 수영장에서 Aquafit 하고오다. / 밭일은 아주 쬐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