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할배에게 소셜 미디어에 당신 얼굴을 공개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주저없이 “sure”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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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낯선 할매 한 분이 등장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매가 아니라 할배였다. 그리고 그 머리가… 와, 화사한 핑크색이다! 내가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분명 핑크였다. 핑크 모자를 썼나 싶어서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웬걸, 모자가 아니라 진짜 머리를 염색한 것이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나만 놀란 게 아니었다. 물속에 있던 다른 할매들도 수군거리며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다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입가에 웃음이 절로 번졌다. 그냥… 좋았다. 자연스럽게 기분이 밝아졌다.
생각해보면, 머리에 핑크 물감 못 올릴 이유가 어디 있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그 할배는 핫 탑에 들어갔고, 우리는 계속 수중 운동을 했다. 대충 30분쯤 지나서 그가 남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아쉬웠다. 뭔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고, 오늘 글감으로 삼기에도 딱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냥 가버렸으니.
운동을 마친 후, 나는 핫 탑에 들어가서 10분쯤 더 쉬다가 샤워를 하고 문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할배가! 아직도 안 가고, 아이들을 위해 매일 풍선을 나눠주는 어느 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반가워서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익스큐즈미,” 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당신 머리, 정말 멋져요.”
그랬더니 그는 반갑게 웃으며, 머리색은 자주 바꾼다고 했다. 때로는 두 가지 색으로 염색하기도 하는데, 그게 취미란다. 얼굴을 보니 70은 훌쩍 넘은 것 같았지만, 나이를 물으면 실례일까 싶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이에 이렇게 멋지게 머리색을 바꾸는 사람, 처음 봤어요. 보기 너무 좋네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내 나이는 62세예요.”
내 속으론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긴 했지만…’ 하고 생각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원래 동양인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니까. 62세건, 72세건, 82세건 간에 몸이 늙어간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는 건 아니잖은가?
그래서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늙었다고, 육신이 조금 느려졌다고, 자신을 늙은이라 부르지 말자. 정신은 아직도 춤을 추고 있고, 마음은 여전히 색을 사랑하니까.”
누구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자기 마음대로 머리도 염색하고, 옷도 입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자. 핑크빛 머리를 하고 나타난 그 할배 덕분에, 나는 오늘 또 하나의 멋진 장면을 마음에 담았다. 즐겁고 경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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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고 온화함 / 15도 / 수영장 다녀와서 밭 일도 하고 쉬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