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지인과 통화를 했다. 우리의 인연은 무려 47년에 이른다. 1976년, 우리가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도착한 곳은 애드먼턴이었고, 그 시절 그 지역에 살던 몇 안 되는 한인 중 한 분이 바로 이분이다. 나보다 세 살 위인 그는 십여 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편의 몫까지 감당하며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그는 딸과 아들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딸은 종교가 달라 전화를 걸기 전 요일을 따져야 하고, 아들은 왠지 남의 자식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홀로 살며,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워커에 의지해 지내고 있지만, 다행히 이웃에 사는 한인 한분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정말 건강했잖아요. 건강이라는 건 늘 내 곁에 있는 줄 알았죠.”

그 말이 마음 깊이 박혔다. 이분은 한때 밴쿠버에서 고된 김치 공장을 혼자 운영하던 분이다. 그 성실함과 강인함을 기억하는 나는, 그의 입에서 ‘사는 게 허무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 오래도록 말을 잊지 못했다.

그랬다.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한국에서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선생까지 했던 분이다. 하지만 캐나다 땅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막노동이나 허드렛일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삶을 일구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들어 남은 건 병 뿐이라는 그의 하소연이 가슴 아프게 와 닿는다.

그는 또 우리 집 옆에 살던 백인 가족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이 셋을 둔 부부였는데, 큰아들이 의사가 되었다고 모두가 축하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러나 그 의사도 혈액암에 걸려 의사직도 내려놓고 지금은 집에서 투병 중이라 한다. 그 가족의 이름과 아이들 이름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나이가 비슷해 자주 왕래하던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라는 것을.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지금 당장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기를.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며,
잠시의 성공으로 자만할 일도 아니다.
인생의 무게는 누구에게도 가볍지 않으며,
때로는 정상을 밟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서서히 내려오는 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러나 자만은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고,
절망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기쁠 때는 겸손을, 슬플 때는 담담함을,
그리고 언제나 살아있음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자.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품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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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 13도 / 교회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