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책 두번째 것 ‘모든것은 그 자리에’ (작가 올리버 색스)를 읽기시작했다. 이 책은 351페이지로 보통 크기다. 하루에 100페이지를 목표로하고 읽는데 오늘 목표는 100페이지보다 조금 더 많이 읽어서 앞으로 삼 일 후면 끝날 것 같다. 책이 재미 있으면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는데 이 책이 그렇다.
69페이지 소제목인 ‘뇌 속으로의 여행’이 매우 흥미롭다.
이 장에서는 프리제시 카린시의 책 『나의 두개골 일주 여행기』를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프리제시 카린시(1887-1938년)는 헝가리의 유명한 시인, 극작가, 소설가, 만담가였는데, 48세에 뇌종양 증상을 처음 경험하게 된다.
어느 날 저녁, 부다페스트의 단골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그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특이한 우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천지사방에서 느린 메아리가 잇따라 들려온다. 메아리는 서서히 커지다고 최고조에 도달한 후, 차츰 줄어들어 결국 사라졌다.” 그는 환청을 들은 것이다.
이렇게 기차의 소음이라는 환청 현상은 이윽고 카린시의 삶에서 붙박이로 자리 잡았다. 카린시는 무언가 심각하고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구역질과 구토, 균형 잡기 및 보행 곤란이라는 후속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지속적으로 흐릿해져 가는 시력이 걱정되어 안과의사를 찾았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던 그는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밀 진단이 이루어졌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뇌종양을 진단하고 병변의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미묘한 일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MRI나 CT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므로, 빛의 움직임을 해석하여 전반적인 이미지를 형성한 다음 기억의 도움으로 최종 이미지를 완성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좋은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드디어 수술이 시작됐다. 아래 글은 그가 수술대 위에서 듣고 있던 소리나 느낌들이다.
<강철이 내 두개골을 통과할 때, 날카로운 굉음이 지긋지긋하게 계속되었다. 그것은 점점 더 빨리 파고들었고, 최고조의 굉음은 매초 더욱 거세지며 당장이라도 고막을 찢을 기세였다.. 갑자기 맹령한 꿈들거림이 느껴지고 난 후 소음이 멈췄다. 긴장감, 압박감, 갈라지고 찢어지는 소리, 끔찍한 비틀림과 절단… 둔탁한 소음과 함게 뭔가가 부셔졌다…. 이런 과정은 수도없이 반복되었다. 또한 그는 수술하는 소리를 다 들으면서 이렇게 독백을 한다.
수술대에 누눈채 버젓이 살아있다니… 그런 상태에서 사람이 살아있다는 건 불가능하고, 믿어지지 않고,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게다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이 있고 심지어 완전 제정신이라니… 내 마음속의 환각은 수술실 내부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나는 개방된 종양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상상했다.종양 자체는 거대한 빨간 공처럼 보였는데, 내 눈에는 작은 콜리플라워만 한 크기로 보였다.>
자신의 머릿속에 체액이 밀려드는 소리를 듣고, 카린시는 그것이 혈액인지 척수액인지 궁금했다. 다행히 종양이 뇌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제거되었고 수술은 잘 진행되어, 양성으로 판명된 종양은 말끔히 사라졌다.
카린시는 건강을 완벽하게 회복했고, 의사들조차 영구적으로 상실할 거라 여겼던 시력도 회복했다. 그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자, 넘치는 안도감과 고마운 마음에 사로잡혀 『나의 두개골 일주 여행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집필했다.
이 책은 신경학적 사례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작품으로, 뇌신경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출간 이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 나는 개인적으로 프리제시 카린시의 수술 장면을 보며, 혹시 영혼이탈 같은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뇌 자체에는 통증 수용체가 없어 머리 피부와 두개골만 마취한 채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수술을 ‘의식하 수술(Awake Craniotomy)’이라고 하는데, 나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방식은 수술 중 환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언어, 시각, 운동 기능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저녁 요리가 오븐에서 익어가는 동안, 타이머를 맞춰두고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따스한 오븐의 온기와 잔잔한 문장의 리듬이 나의 하루를 풍요롭게 채워간다.

*저녁상 : 열무김치, 감자 계란 샐러드, 두부와 토마토소스에 모짜렐라치즈,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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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슬리퍼를 색칠하다.
슬리퍼는 아직 멀쩡하지만, 아무리 비누로 닦아도 우중충하다. 평소에 신던 슬리퍼가 1년 넘게 신었더니 헐렁거려서 새로 살까 하다가, 그냥 이 슬리퍼에 색칠을 해 보기로 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지구 오염을 생각하면 쓰레기 하나라도 덜 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버리는 대신 다시 써 보기로 했다. 이 슬리퍼는 수영장 내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샤워장에서 수영장 안으로 몇 걸음 걸어 들어갈 때 신으려고 사용하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뭐 이런 궁상스러운 짓을!” 하며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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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흐리고 비 / 으스스 춥다. / 14도 / 수영장 다녀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