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비가 제법 내렸다.
나는 해바라기 씨앗 한 웅큼을 손에 쥐고, 모자 달린 잠바를 걸쳐 입고 밭으로 나갔다. 올여름 우리 마당엔 분명히 해바라기가 풍성히 피어날 것이다. 작년에 받아놓은 해바라기 씨를 몇 달 전부터 1~2주 간격으로 나눠 심고 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다 심지 않는 이유는 해바라기가 다 같은 시기에 피고 지면,  그 아름다움을 오래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간차를 두고 심어야 해바라기의 미소를 더 많은 시간 누릴 수 있다. 이미 심어둔 해바라기들은 그 키가 요즘 눈에 띄게 쑥쑥 자라나고 있다. 아마 한 달 후쯤이면 해바라기의 그 환한 꽃잎들이 활짝 펼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 기대를 품고, 나는 손에 든 씨앗을 빈 땅을 찾아서 하나씩 흙 속에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밭 한켠에 해바라기 씨앗 껍데기들이 우수수 널려 있는 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속은 텅 비었고 껍데기들 뿐이었다. 뭐지?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그랬구나.”
작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며칠 전, 씨를 뿌리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더 이상 굽힐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들고 있던 씨앗을 그냥 밭 위에 주욱 뿌려놓고 들어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어떻게든 흙 속에 조금은 들어가겠지’ 하면서 어이없는 희망을 품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현실은 그 땅위에 뿌려진 씨앗들이 몽땅 새들의 먹이가 되었고, 그 자리엔 껍데기만 남아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그날, 손에 쥐고 있던 호미로 흙을 슬쩍이라도 덮어주었다면 절반은 살아 남지 않았을까? 아침에 본 이 장면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사람의 삶, 특히 어린아이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들도 해바라기 씨앗과 같다. 

그저 씨앗을 뿌려만 두고 흙을 덮어주지 않으면,
공중에서 새가 쏜살같이 날아와 씨앗을 쪼아먹듯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는
남자아이라면 뒷골목을 떠도는 청년이 되기 쉽고,
여자아이라면 성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바빠서, 힘들어서, 혹은 “설마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정성을 기우리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쉽게 세상의 먹잇감이 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큰 사랑이 아니다. 한 번의 거창한 관심이 아니라, 작지만 꾸준한 사랑이다. 흙 한 줌, 손끝만한 정성, 그것이 아이를 살리고, 키운다. 그 사랑 하나가 아이를 커다란 해바라기처럼 밝고 곧게 자라게 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침, 텅 빈 해바라기 껍데기를 보며 또 하나의 진리를 배웠다. 모든 생명은 작은 정성을 먹고 자란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아이도 부모의 손길과 관심 없이 자랄 수 없다.

작지만 따뜻한 손길이, 언제나 아이 곁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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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비오다가 오후에는 해가났다. / 16도 / 애드먼턴 선교 바자회가 교회 친교실에서 있었다. 많은 교인들이와서 함께 먹고 마시며 선교에 동참했다. 준비한 손길들에 감사하며 특별히 재료 구입을위해 밴쿠버까지 다녀온 성호숙 집사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