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아일랜드 나잇’을 위한 무대 뒤 휘장에 그림을 그렸다. 커다란 천 위에 붓을 들고 서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마치 무대 뒤의 조용한 연출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하나하나 색을 얹어가며 상상의 장면을 현실로 옮겨가는 이 작업은 그 자체로 작은 연극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어제는 큰 검정 천에 밑칠을 해두었는데, 막상 오늘이 되니 그것을 펼쳐 놓을 마땅한 공간이 없어 그림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이즈가 너무 커서 바깥에서 걸쳐 놓을 만한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덩그러니 놓인 무거운 천을 바라보며 ‘이걸 어쩌나’ 싶던 순간, 문득 집 안에 있던 얇은 천이 떠올랐다. 얼른 꺼내보니, 두 장을 이으면 휘장에 올릴 크기와 거의 비슷했다. 그렇게 나는 결국 실내에서, 식탁 위에 그 얇은 천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어제의 수고는 모두 헛일이 되고 말았다. 시간을 들여 정성껏 칠한 그 검정 천은 결국 쓰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기획’이라는 단어를 절실히 떠올렸다. 처음부터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어쩌면 그 수고와 재료는 아끼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또한 값진 배움이었다.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는 매일매일 실수하고, 배우고, 다시 방향을 잡아가며 살아간다.

천의 사이즈는 컸고, 얇은 천은 물감을 곧 바로 천 아래로 흘려내렸다. 밑에 커다란 종이를 깔기는 했지만 식탁 테이블이 물감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고, 수시로 천을 들어올려 닦아내며 그림을 이어가야 했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지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면 언제나 그런 과정을 지나치게된다. 그림 그린 천의 물감이 말라야 다른쪽으로 이어질 수가 있기 때문에 집안은 온통 전쟁터처럼 온갖 물감들과 붓들이 너부러질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휘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수정할 부분도 많고, 전체 배경을 검정으로 덧칠하는 일이 남아 있다. 얇은 천은 두꺼운 캔버스처럼 마음대로 색이 얹히지도 않고, 번지기도 쉬워 섬세한 조절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충의 윤곽이 드러난 휘장을 배란다에 위에 널어놓고 말리는 중이다.

휘장 하나 그렸을 뿐인데, 마음속에는 작은 무대 하나가 차려진 듯하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실수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며, 다시 일어서 나만의 이야기를 연습하고 있다. 삶이란 결국, 매일을 무대 삼아 스스로의 연출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오늘도 그렇게, 그림 속에 나의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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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 21도 / 내일은 25도 예보다. 교회 소풍가는 날이다. 나는 김치를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