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은 새벽 2시 38분이다. 간밤에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책이 끝난 후 갑작스럽게 광고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그 뒤로 다시 잠을 청해보려 애쓰며, 여러 방법을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전긍긍한 채 두어 시간을 허비하다 결국 아래층으로 내려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8월쯤 다시 보려고 미뤄두었던 올리버 색스에 관한 책이다. 책장을 넘기다 어느 한 문장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그것은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형을 ‘가공되지 않은 존재’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p.233).

올리버 색스는 부모와 함께 모두 명망 있는 의사 집안의 일원이었지만, 그의 형은 조현병을 앓고 있어 사회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나 『온 더 무브(On the Move)』 같은 책, 그리고 여러 자전적 에세이에서 형 마이클(Michael Sacks)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마이클은 병의 영향으로 현실 감각에서 멀어지고,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와는 다른, 독특한 인식의 세계에 머물렀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는 형을 깊이 사랑했지만, 그의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을 바라보며 동시에 죄책감과 슬픔을 안고 살아갔다. 색스는 형이 사회적 규범이나 논리에 얽매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 그것이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형을 ‘가공되지 않은 존재’ — 즉 틀이나 장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 원초적 본성을 드러내는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원래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회 속에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점 약삭빠르게 순수함에 덧칠을 하게 된다. 때로는 가식이, 때로는 거짓이 양념처럼 스며든다. 그렇게 인간은 진실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그 변화는 어쩌면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문명화되기 이전의 인간,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떠올려보면 그들이 살던 세상은 지금보다 범죄도 드물고 훨씬 순수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날 그런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면 여러모로 위험하거나 사회와 어긋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 반 고흐, 니체, 아인슈타인처럼 시대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이들은 예술, 철학, 과학의 영역에서 놀라운 창조를 이루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면의 순수함을 간직한, ‘가공되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모든 사람들이 잠들있는 이 새벽에 ‘가공되지 않은 인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참… 요상한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이만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3시15분) 오늘은 교회 야외예배가 있는 날인데, 공원에서 졸지는 않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