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아직 대사 하나하나가 배우들의 입에 제대로 붙지 않는다.
대본을 어제야 전달했으니 충분히 읽어볼 시간도 없었지만, 다행히 이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성경 이야기다.

드릴라 역을 맡은 유현자씨는 얼굴이 야시시(?)하게 생겨 역할에 어울릴 것 같았는데, 정작 그 느끼한 유혹의 연기가 잘 안 나오는 바람에 내가 자꾸 “그렇게 하면 안 돼!” 하며 몇 번이나 윽박지르게 되었다.

반면 삼손은 어찌된 영문인지 대사를 더 간지럽고 부드럽게, 마치 여주인공처럼 소화해낸다.
그래서 한때는 삼손과 드릴라의 역할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까지 잠깐 스쳤다.
“이거, 우째된 일이고!”

연습이 끝난 뒤엔 내가 준비한 저녁식사로 허기진 배우들의 배를 채웠다.
마무리는 따끈한 붕어빵으로 했는데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웃음으로 채워진 저녁이었다.
연습 내내 까르르, 깔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어쩌면 연극보다 이 연습 풍경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이 돌아간 뒤, 설거지를 하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세상의 연예인들은 정말 타고난 끼를 가졌구나.
그들의 진심 어린 연기로 우리는 웃고, 울고, 그렇게 위로받으며 산다.
오늘 연습 대사 하나하나를 다시 떠올리며, 내가 고쳐주어야 할 부분도 몇 번이고 여러번 있었다.

그리고 혼자 피식 웃었다.
삼손이 힘 빠져 쓰러지는 장면에서 밧줄을 묶어줄 사람, 나는 이미 비밀리에 한 명 정해두었다.
그분은 절대 “아니오”라고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문득 예전 추억이 떠오른다.

제3회 아일랜드 나잇 때의 연극은  ‘심순애와 이수일’ 이었다. 그 당시 김중배 역을 맡았던 분은 다름 아닌 우리 교회 제1대 조용완 목사님이었다. 평소에는 점잖고 조용하시던 목사님이었기에, 그분의 연기 변신은 정말 놀랍고 인상 깊었다. 특히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심순애가 하이힐을 신고 무대를 지나갈 때,
김중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가씨, 뭐 인생 별거 있습니까?”

그 짧은 한마디에 심순애는 마음이 흔들렸고,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박수로 무대를 채웠다.

며칠 뒤, 목사님이 마켓에 갔는데, 그 연극을 봤던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저기 김중배 간다!”
목사님은 이 에피소드를 설교 시간에 직접 전하며,
“내가 목사인데, 사람들은 날 김중배로 기억하더라…” 며 웃으셨다.
그 웃음에 교인들 모두 한바탕 배꼽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참, 세상엔 사람을 잘 웃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결코 가볍거나 얄팍하지 않다.
그만큼 마음이 깊고, 따뜻하고, 온유한 이들이다.

이번에 ‘삼손과 드릴라’ 역을 맡은 두 배우 역시 각오가 대단하다.
오늘 연기는 그저 책을 읽는 수준이었지만,
“진짜는 당일 무대에서 보여드릴게요!” 하고 다짐하듯 말하는 그 눈빛이 믿음직하다.

나 역시 잘 준비하고 있다.
그날, 모두 함께 실컷 웃을 수 있도록.
웃음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르게 하나로 이어주는 마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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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 17도 / 교회 다녀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