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이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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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만난 죠이스 할매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간밤에 한국 영화를 보다가 너무 슬퍼서 무려 30분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고 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지만, 그 감정의 잔물결은 아침까지도 그녀의 마음을 휘감고 있었던 듯했다.
죠이스가 그 슬픔을 나누고 싶어 이른 아침에 멀리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헐, 그 나이에 영화 보고 울긴 다 우냐”는 핀잔이었다고 한다. 나는 어떤 영화가 그렇게 죠이스의 가슴을 울렸는지 궁금했지만, 제목을 알 수 없어 넷플릭스를 뒤적이며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훑어보았으나, 그녀의 마음을 울린 바로 그 작품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래전 제작된, 인생의 고비를 진하게 담아낸 옛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올해로 83세인 죠이스가 아직도 영화를 보며 그렇게 서럽게 눈물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요즘, 아무리 슬픈 상황에 닥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눈물샘은 말라붙은 것 같다. 아마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흘릴 수 있는 눈물을 다 쏟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울 일이 참 많았다.
가족 사이에서 느꼈던 불공평한 사랑의 무게.
결혼 후,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던 남편의 무심함.
그리고 삶이 너무 벅차, 모두가 잠든 밤중에 조용히 이불 속에서 삼켜야 했던 울음들.
그때는 정말, 눈물이라는 것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아픔도, 어떤 기억도 눈물을 불러오지 못한다. 슬픈 생각조차 잘 떠오르지 않으니, 어쩌면 그것이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눈이 너무 따가워 참을 수가 없었다. 무방부제 인공눈물을 넣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치 눈에서 불이 나는 듯한 통증이었다. 겨우 세면대로 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눈을 씻어내니 조금 가라앉았다. 그 순간 문득, 내 눈이 스스로 눈물을 만들지 못해 억지로 ‘눈물’을 사서 넣어야 하는 이 상황이 참 우스우면서도, 어쩐지 서글펐다.
나는 죠이스 할매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 행운이야. 아직도 그렇게 펑펑 울 수 있는 눈물이 있다는 건,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눈물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말하는 방식이자,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명이다.
슬픔에 공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세상 속에 깊이 발붙이고 있는 사람이다.
죠이스의 눈물은, 그 어떤 위로보다 강한 생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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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는 손녀 지원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미국은 초등학교가 5학년까지고 6학년부터는 미들스쿨로 들어간다.) 동영상에서 가려낸 사진이라 분명하지가 않다. 지원이는 올해 11살이다.

저녁 : 마파두부, 얼갈이 김치, 잡곡밥 – 하숙선생님은 남은 마파두부를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얼갈이 김치도 맛이 최고의 정점을 찍고있다.
날씨 : 맑음 / 16도 / 수영장 다녀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