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바라기가 제 모습을 들어냈다. 마치 첫 손녀를 만난 듯 얼싸안고 사진 한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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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에 사는 시조시인 지희선님의 시조집 L.A. 팜트리』에는「빗방울 점묘화」라는 인상 깊은 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차창에 빗방울이 / 점묘화를 그린다. / 바람의 탓이런가 / 여기 찍고 저기 찍고 / 나도야 / 아직 찍지 못했네 / 내 인생의 마침표 /
이 짧은 시조는 마치 한 편의 서정적인 수채화처럼 조용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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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하나하나 유리창에 맺히는 모습을 ‘점묘화(Pointillism)’로 표현한 시인의 시선이 아름답다. 차창은 마치 삶의 프레임이고, 그 위에 맺힌 빗방울들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기억, 감정의 작은 점들이다. 시인은 이 장면을 고요히 응시하며, 인생을 관조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시작부터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울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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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탓이런가”라는 구절은 인생의 방향과 선택이 언제나 내 의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은유한다. 빗방울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맺히듯, 우리 삶도 외부의 바람—즉 우연, 운명, 시대, 타인의 영향—에 흔들리며 이루어진다. “여기 찍고 저기 찍고” 맺히는 물방울의 궤적은 곧 우리 삶에 남은 흔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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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 “나도야 아직 찍지 못했네 내 인생의 마침표”는 자기 성찰의 진심 어린 고백이다. 마침표는 어떤 완성이나 끝맺음, 때로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시인은 아직 그것을 찍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삶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겸허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것은 미완성의 불안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은은한 자각이다.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삶은, 단순한 미련이나 후회라기보다도 ‘지금도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무엇인가를 느끼고, 배우고,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 역시 이 시조시인처럼 창가에 부딪히는 물방울을 바라보다가 때때로 마음속 그림을 그리곤 한다. 비의 점묘화 속에 내 마음의 스케치를 더해보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의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 나에게 이 시조는 참 반갑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자꾸만 다시 읽게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창가에서, 아직 찍히지 않은 마침표를 기다리며 그렇게 점묘화를 그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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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부부의 방문이 있었고, 월남쌈으로 맛있는 저녁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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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 14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