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팩스에 있는 피어 21(Pier 21)에 다녀왔다. 이곳은 캐나다 이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마치 미국의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와 같은 역할을 한 곳이다. 1928년부터 1971년까지 약 43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캐나다 땅을 밟은 입구였으며, 현재는 ‘캐나다 이민 박물관(Museum of Immigration at Pier 21)’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의 꿈과 눈물, 희망이 서려 있는 감동적인 장소다. 딸아이가 이곳을 추천해줘서 방문하게 되었고, 매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운영 기간 동안 피어 21에서는 이민 심사, 건강 검진, 입국 허가, 통역, 국경 관리 등이 이루어졌고, ‘캐나다의 문(Canada’s Front Door)’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이곳을 통해 입국한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 난민들이 많았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그리스,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전쟁과 가난을 피해 떠나온 가족들이었으며, 피난민, 고아, 전쟁 신부(war brides, 캐나다 군인과 결혼한 유럽 여성들), 전쟁 고아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홀로코스트 생존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 이곳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문이기도 했다.

전시실에는 실제 이민자들의 사진, 일기, 옷가지, 여행 가방, 작은 가구 등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당시 4인 가족이 배를 타고 캐나다로 오는 데 약 6천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 평균 연봉이 3~4천 달러였으니,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입국 심사는 특히 까다로웠다. 건강 상태, 범죄 이력, 무기 소지 여부, 간단한 영어 시험 등을 통해 철저히 심사했으며, 몇 일에서 몇 달 동안 심사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해 다시 돌아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왜 하필 피어 21 항구였을까?의 질문에 이곳이 가장 수심이 깊고 겨울에 물이 얼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아시아인에게는 이민의 문이 훨씬 늦게 열렸다. 정확히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인종차별에서 벗어난 이민 정책이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우리 가족이 1976년에 캐나다에 이민 왔다는 것은 상당히 초기 이민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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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비가오다 / 24도 /

박물관을 나와 길을 걷고 있는데, 한국인 부부가 지나갔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한국 분이세요?” 하고 인사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잠시 대화를 이어갔다. 이 부부는 크루즈 여행 중으로, 오늘 하루 이곳에 배가 정박해 있어 시내 관광을 나오셨다고 했다. 토론토에 거주하며 일찍 은퇴한 후 노후를 즐기고 계신다는데, 빅토리아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

두 분 모두 인상이 참 좋았고, 밝고 명랑한 성격 덕분에 처음 만났음에도 대화가 참 편하고 즐거웠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