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깊은 물에서 진행되는 Aquafit 수업에 맞춰 수영장에 도착했다. 허리에 벨트를 두르고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깊은 수압 때문에 갈비뼈가 눌려 통증이 느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벨트를 풀었다. 이후에는 더 이상 깊은 쪽에서 운동을 못하고 얕은 쪽으로 자리를 옮겨 강사의 지시에 맞춰 계속 운동을 했다.

내 키에 딱 맞는 수심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내 옆에는 인도계 할매가 운동 중이었다. 거리가 좀 가깝긴 했지만, 서로 피해가며 운동하면 충분히 문제 없을 정도였다. 나는 몇 번 물을 가로지르며 이동했는데, 그때 그 할매가 나를 향해 한마디 툭 내뱉었다.

“This is my area.” (여긴 내 구역이야.)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지만, 곱씹을수록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 계속 운동을 했다. 그러자 이 할매, 내 존재 자체가 거슬리는지 자꾸 불편한 눈초리를 보내더니, 기어이 내 앞으로 다가와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You’re doing this on purpose. You’re getting close to me intentionally.” (너 일부러 내 근처로 오는 거지?)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꾹 참고 자리를 피하지 않고 계속 내 갈 길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이 할매가 내 앞에 서더니 정색을 하고 나를 노려보며 뭔가를 또 따지려고 했다. 순간 내 속에서 무언가가 확 끓어올랐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 거렸다. ‘니 오늘 잘 걸렸다. 나는 한국 할매인데 네가 나 무서운걸 모르나 본데, 어디 한 번 붙어보자.’

마음을 다잡고 나도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단호하게, 크게 외쳤다.

“Did you buy this pool or something? Did you plant a flag here or what?” (이 수영장을 네가 샀어? 여기에 깃발이라도 꽂았어?)

내 강한 한 방에 당황한 그녀는 주변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 쪽으로 가서 뭔가를 쏼라쏼라 털어놨다. 하지만 이미 나는 상황을 두 할매에게 미리 공유해둔 상태였다. 이 할매 둘은 바로 내 편에 서서 그 인도계 할매 이렇게 말했다.

“This pool belongs to everyone. No one owns a spot here.” (여긴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이예요. 누구 것도 아니죠.)

이렇게 잠씨 싸움이 일단락된 후, 나는 이 인도계 할매를 더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아예 그 할매와 정확히 같은 라인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인도계 할매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지만, 나는 먼 산을 보는 척하며 그대로 그녀를 향해 직진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이 할매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아마도 ‘강적을 만났구나’ 하며 두 손 들었겠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던 멀리서 보고있던 두 할매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네가 잘못한 거야”**라며 한마디씩 훈수를 둬 주었다. 그 인도계 할매는 점점 초라해지는 눈빛으로 내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인도계 할매가 내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다소곳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I’d like to apologize.” (사과하고 싶어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게 뭐지? 갑자기 왜?’ 싶었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자, 그녀는 다시 정중히 말을 이었다.

“Whether you accept it or not is up to you. But I apologize.” (당신이 사과를 받아들이든 말든, 나는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 말투에 나는 더 이상 마음을 닫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싸움보다 평화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답했다.

“Okay, I accept your apology.” (좋아요, 당신의 사과 받아 들이지요.)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과라는 단어 하나로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변화가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이후 나는 그녀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운동을 마무리했다.

운동이 끝날 무렵, 내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 미소 지으며 “I am Alicia” 라며 내 이름을 말했다. 그녀도 곧 자기 이름이  Linda 라며 소개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나누며 해프닝을 마무리 했다. 운동이 끝나고 Hot Tub에 들어가 내가 가장 친한 할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자, 그녀가 깔깔 웃으며 이렇게 갑자기 일어날때 쓰는 슬랭 하나 알려주었다.

Hey, What’s your name, Karen?” or “Okay, Karen~” (싸움이나 말다툼 상황에서 빈정거리듯 말할 때 쓰는 대표적인 비꼬는 표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맑음 / 21도 / 수영장에서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던 날 / 전문가가와서 집안 카펫 스팀으로 베큠크리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