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가 나오고 처방이 정해질 때까지는 통증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될 수 있는 한 T-3는 피하려고, 보통은 타이레놀과 에드빌로 견디고 있다. 오늘도 종일 참고 버티다가 방금 T-3 하나를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렇게 조금씩 줄여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T-3 없이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를 해본다.

나의 몸 상태는 그럭저럭 버틸 만하지만, 아이들이 와서 함께 식사 준비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내가 손을 대지 않을 수가 없다. 딸아이와 아들은 요리를 좋아하고 또 잘하기 때문에, 나를 부엌에 못 나오게 막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그릇이 어디 있는지, 식재료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야 하니 부엌은 늘 분주해진다.

그저께는 딸아이에게서 에어캐나다 파업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손자가 좋아하는 찐빵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에 따끈따끈하게 준비해두고 싶었다. 역시나 손자는 찐빵을 먹으며 엄지척을 하고, “너무 맛있다!” 하며 좋아한다. 아들의 말로는, 가게에서 찐빵을 사다 주면 손자가 맛없다고 잘 먹지 않는데, “할머니 찐빵이 최고”라며 평소에도 늘 말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힘든 몸도 순간 잊히고 마음이 뿌듯해진다.

저녁에 교회를 다녀온 뒤, 딸아이가 좋아하는 계란찜을 두 개나 만들었다. 불고기와 샐러드, 그리고 부침개까지 곁들여 식탁을 채우고 나니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침대 위에 올라와 잠시 쉬려 하니, 허리가 끙끙거리며 요동을 친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꽉 차 있었다.

그동안 시애틀에 사는 아들과 멀리 핼리팩스에서 지내는 딸과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모여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그저 감사하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두 아이는 이제 훌쩍 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가 만든 것, 엄마의 손맛”이라며 감격스러워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뭉클해지고 눈가가 살짝 젖는다.

“그래, 얘들아.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살아도 너희 마음은 여전히 내 울타리 안에 있구나. 아니, 아마 영원히 그렇겠지…”

엄마는 요술장이 되어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때론 희극배우처럼 웃음을 선사하며, 동시에 가장 큰 가치를 품고 살아간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그래서 다 위대하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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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20도 / 맑음 / 교회 다녀오다. /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Air Canada 파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승무원들의 처우가 생각보다 열악하다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탑승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라 착륙할 때까지의 시간만 월급으로 계산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파업에 들어가면 그 기간 동안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해 생활이 무척 어려워진다고 했다.

게다가 딸아이도 내일(화요일) 알래스카로 옮겨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캘거리에 하루 머물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숙박비도 회사에서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 부담이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승무원들의 삶이 겉으로 보근것과 달리 그 이면은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