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에서 온 여자 조카와 전주에서 올라온 언니 셋이 한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추석이라고 서울에 사는 친정 조카 며느리가 저녁 초대를 해주어, 모두 단단히 차려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택시였다.
전화기를 붙잡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겨우 통화가 된 곳은  평소보다 네 배 가격이 표시된다. 그래도 할 수 없다싶어 불렀는데 나타난 택시 기사는 “미터기가 고장이라 못가게 못 갑니다. 죄송합니다.” 라며 떠나버렸다. 현금으로 내겠다고 사정해 보아도 그 말이 소용없었다.

헐— 이게 무슨 추석판 <무한도전>인가.

결국 우리 셋은 비를 맞으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빗소리는 점점 굵어지고, 세 여자는 동시에 “포기!”를 외치듯 침대 위에 나란히 벌러덩 누웠다.
그러다 제일 젊은 조카 정미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모, 제가 마트에 가볼께요. 라면이라도 끓여먹죠!”

그 말이 어쩐지 전투 선언처럼 들렸다.
정미는 우산을 들고 빗속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손에 오징어라면 세 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파티를 벌였다.

“와, 이거 매운데 괜찮다!”
“이게 오늘의 추석상이지 뭐!”

우리는 웃음소리를 간식 삼아 수다를 떨며 라면 국물로 저녁 식사를 마감다.

그런데 평화도 잠시.
불을 끄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가 외쳤다.
“어, 가렵다!”
순식간에 방 안이 모기와의 전쟁터로 변했다.
불을 켜니 손등과 목이 붉게 부풀어 올랐고, 모기 한 마리가 천장 부근에서 도도하게 비행 중이었다.
“저놈이 주모(主謀)야!” 조카 정미는 전기 파리채로 모기잡기에 돌입했다.

매일 밤 벌어지는 이 사투는 이젠 숙소의 일상이 되었다.
도대체 어디서 한 마리가 들어왔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그 한 마리가 매일 밤 알을 까고 자손 대를 이어 우리 피를 탐닉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켜서 방 온도를 내리고 참으려 하지만, 복수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타향에서 맞은 추석, 라면으로 한 끼 때우고, 모기에게 피를 헌납한 밤.
이보다 더 살아 있는 명절의 추억이 또 있을까.

라면 냄새와 모기 소리, 이 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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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비 / 23도 / 익숙지 않은 습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