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니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지난 가족사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된다. 그 곁에서 조카가 한마디씩 거들며 웃음과 눈물의 양념을 더해준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엄마는 늘 나에게 무서운 존재였어요. 그럴 때마다 난 이 집 자식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시골길을 걸어 기차역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아버지와 나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먼지 나는 자갈길을 떨어져 걸었어요. 그래서일까, 내 생애 ‘아버지’라고 불러본 기억이 한 번도 없어요.”

언니는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문득, 나는 어린 시절 아이로 살지 못하고 서둘러 어른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엔 종종 이유 모를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아무도 어린 딸이, 어린 동생이 그렇게 서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세월은 그저 흘러갔다. 나만 그랬을까? 조카에게도, 언니에게도 저마다의 상처가 있었겠지. 우리는 이야기하다 웃다가 울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언니는 아버지가 자신을 등에 업고 짜장면을 사주셨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고 난 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때 조카가 조용히 말을 보탰다.
“그 먼지 나던 시골길을 따로 걸으시던 아버지도, 속으론 ‘미안하다’는 말을 삼키셨을 거예요. 그게 더 아프셨을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 깊은 곳이 울렸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린 마음에 품었던 ‘나는 진짜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상상이 내 유년기를 앗아갔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그 시간들을 되찾기 위해, 지금도 나는 마음속의 옹이진 상처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풋풋한 청소년 시절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탓일까. 요즘도 나는 가끔 철없는 소녀처럼 마음속에서 뛰어다닌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단 한 분 남아 있는 혈육인 언니 앞에서 어린 시절처럼 어리광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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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흐리기도하고 맑기도 했다. / 23도 / 반포에 있는 ‘새빛 둥둥섬’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