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사는 언니는 지금 혼자 지내지만, 그 집은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 가족들이 찾아오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늘 곁을 지켜주니 외롭지 않다. 그것은 언니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특별히 돈에 인색하지 않는 성품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어떻게 대해주는가에 따라 그 마음을 되돌려주는 법이다. 언니는 그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언니가 여든셋 번째 생신을 맞았다. 조카들 가족이 모두 모였고, 50세에 세상떠난 언니의 남편인 형부도 참석해 주셨다. 형부는 젊은 시절 먼저 떠난 아내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삼십 년이 넘도록 홀로 지내고 계신다. “그때는 내가 철이 없었어…” 하며 생전에 언니를 잘 돌봐주지 못했던 회한 섞인 말을 내뱉을 때마다, 우리는 그 마음의 깊이를 짐작할 뿐이다.
오촌 조카가 옛날 흑백사진 몇 장을 꺼내놓았다. 조그만 상 위에 펼쳐놓은 사진 속에는 어린 꼬마들과 우리집과 그 오촌조카 가족들이 가득했다. 사진속의 어른들은 대부분 세상 떠났고 그 꼬마들이 지금의 우리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 속에서 자기 얼굴을 찾는라 바빴고 추억을 건져 올리듯 오래도록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나였어?” 하며 웃기도 하고, “저기 엄마가 계시네…”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젊은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내일은 KTX를 타고 전주로 내려간다.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뼈 주사를 맞을때만 잠시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다. 내 몸의 현재 상태는 통증이 칼로 찌르는 듯하진 않지만, 가슴 앞자락이 늘 무거운 돌덩이처럼 눌려진 듯한 느낌은 여전하고 나를 매우 힘들게 한다. 그래도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니 얼굴은 복실한 강아지처럼 보기 좋다. 하기사 얼굴까지 쭈그러졌다면 나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더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흑백사진을 보고 온 후라서일까? 문득 옛날이 그리워졌다. 여름이면 온 가족이 마루에 둘러앉아 수박을 잘게 썰어 얼음에 채워 먹던 기억, 달콤한 간식이 귀하던 시절 엄마 몰래 다락에 숨겨둔 꿀단지나 흑설탕을 한 숫가락 훔쳐먹던 장면까지… 내 머릿속의 오래된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아련하게 떠오른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언제나 보석처럼 빛난다. 올해의 따뜻했던 모임처럼 내년에도 다시 한자리에 모여 웃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약속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날씨 : 비가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