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매일 산책하는 길목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백일홍 무리들… 기후 관계인가? 아직도 백일홍이 이 처럼 많이 피어있는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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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온 지 아흐레째 되는 날이다. 이제 이곳의 일상이 제법 자리 잡았다.
아침을 먹고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10시쯤 요양보호사가 온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나를 자신의 자동차에 태워 수영장으로 데려다준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수영장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마침 걸레질을 하는 직원을 만났다. 지난주 나에게 소리를 ‘꽥’ 지르던 바로 그 여자였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물을 바닥에 흘려서 혼났던 사람이에요. 그날 정말 죄송했어요. 첫날이라 그랬어요.”

그녀는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괜찮아요.”

그러더니 나를 한참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런데, 나이는 좀 드신 것 같은데, 말씀이 참 절제된 분이시네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음…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있구먼.’
웃으며 내 락커로 향했다.

지난주의 실수는 이제 물 건너갔다.
이젠 척척이다. 옷을 홀랑 벗고 속옷, 수건, 비누 바구니를 들고 샤워장으로 간다. 깨끗이 씻고 수영복을 입은 뒤 물속으로 풍덩!
수영을 마치면 다시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벗은 채로 몸을 닦은 다음 락커로 돌아와 옷을 입는다.

수영을 마친 여자들은 각자 화장하기에 바쁘다. 우와,  한국 여자들 모두 얼굴가꾸기에 바쁘다.
모두들 곱게 단장한 채 수영장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빅토리아에서의 우리 모습을 떠올린다. 그곳의 여자들은 대부분 그냥 얼굴 닦고 집으로 간다. 나도 늘 그랬다.

하긴, 한국 여자들은 수영 후 삼삼오오 모여 카페도 가고 점심도 먹는 모양이다.
그룹들이 지나가며 “얘, 거기 좋아. 그리로 가자.” 하며 웃는 모습이 정겹다.

낮에 수영장에 오는 한국 여자들은 시간의 여유가 있는가 보다.
캐나다에서는 젊은 여자들이 낮에 삼삼오오 수영장을 드나드는 건 쉽지 않다.
남편과 함께 일해야 살 수 있기에 그런 여유는 드물다.

수영장 안에서 걷기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내 몸을 살짝 밀치며 지나가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일부러 “아… 아…” 하고 소리를 내자, 그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죄송해요.” 하더니 물 한가운데로 비켜갔다.

며칠간 이 무자비한 아줌마들의 활보에 어정쩡했던 나는 이제 결심했다.
내 줄에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다!
느리지만, 내 길로 묵묵히 나아간다.

조금 있으니 또 한 팀이 뒤에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
“조금 천천히 갈 수 없을까요?”
그녀는 살짝 놀란 얼굴로 내 옆을 돌아 나갔다.

이제 나도 수영장에서 내 살길을 찾았다.
절대로 내 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피해 간다.
인생이란 게 그렇지 않나? 이쪽이 밀리면 저쪽으로 밀고, 세상이 나를 흔들면 나는 웃으며 다시 중심을 잡는다.

그래, 니들이 그러면 나도 이렇게 하지 뭐!
나는 물속에서 찬송가도 부르고, 때로는 옛날 유행가도 흥얼거린다.
물결이 내 어깨를 토닥이고, 햇살이 창을 뚫고 내려와 내 머리 위에 춤춘다.

내 발끝에서 물방울이 반짝이며 튄다.
‘나는 지금, 전주 수영장의 여왕이다!’ 라며 스스로 최면(催眠)을 걸어보는거다.
느릿느릿 걷지만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가볍다.
물이 내 친구가 되고, 내 노래가 되고, 나의 하루가 된다.

수영장 나들이, 쫗아쫗아! 인생도 이렇게 폼나게 헤엄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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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해가 나고 아주 좋았다. / 지금 온도는 13도 / 산책과 찻집에 들렸다. / 교회 여자 권사가 찰밥에 밤도넣고 각종 콩을 넣어 밥을 한 가득 만들어 주었다. 밤 까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손수 맛있는 밥을 한 통 만들어 보내다니. 뿐만 아니라 고구마, 감, 밤 등등 각종 먹기를 계속 선물로 보내오는 교우들이 있다. 언니 냉장고와 부엌에 먹거리 천국이 됐다. / 내가 왔다고 점심 먹으러 가자는 전화도 여러통이 들어왔다. 무척 정다운 교 인들이다.